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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Dec 24. 2024

공부가 시작되었다

육아도 공부가 필요해

출산 후 입원 기간 동안 첫째 아이를 시댁에 맡길 예정이었다. 첫째 날 밤은 할머니집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면서 무사히 넘어갔는데… 둘째 날에는 엄마 아빠한테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나 보다. 둘째 날 저녁 시어머니의 다급한 호출이 있었고, 그렇게 첫째 아이는 우리가 있는 입원실로 오게 되었다. 나와 남편, 첫째와 갓 태어난 신생아 둘째, 이렇게 우리 네 식구의 입원실 생활이 갑자기 시작되었다.


동생을 처음 보는 첫째는 동생을 보며 환하게 웃었고, 동생을 가리키며 서툰 발음으로 “아.기.”라고 말한다. 동생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예쁘)다~”라고 말한다. 동생이야~“라고 말해주니 엄마 배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엄마 뱃속에 있던 동생이 이제 밖으로 나와서 여기 있는 거라고 설명해주는데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으면서 ”아기. 아기. 동생. 동생.” 중얼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간호사 언니가 들어오면서 “어머, 너도 아기면서 아기라고 하는구나“라고 말한다. 맞다. 자기도 아기면서 아기를 보고 귀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하지만 귀여움은 여기까지.


첫째가 둘째보다 더 힘들 줄이야. 둘째는 조용히 누워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는 반면, 첫째는 좁은 입원실 안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자기 맘대로 못하게 하면 바로 시끄러운 울음 가동.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잘 안 자고 말도 잘 안 듣고. 둘째가 울어서 첫째가 밤에 못 잘 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반대다. 첫째가 너무 시끄럽게 울어서 곤히 잠든 둘째가 깰까 봐 조마조마하다. 우리 애가 원래 이랬었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감당 안 되는 힘듦을 느낀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며 멍한 상태에 있는 그 와중에도 첫째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부지런히 어지르며 빈 공간 없이 꽉 찬 소음과 동작을 일으킨다. 눈앞에 갑자기 펼쳐진 이 상황을 맥없이 바라볼 뿐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음에 무기력감을 느낀다. 잠을 못 자서 몸도 마음도 퀭하다. 첫째가 밉다. 앞으로 나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지? 미래가 암담하다. 이런 잡생각들로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한다.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단 지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생각을 그만 멈추자. 일단 자자.


유독 힘들고 고되게 느껴졌던 주말 육아가 끝나고 남편이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이제 어렵게 참고 견디며 간신히 버텼던 간밤의 소란이 지나갔고, 잠시 동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생각이란 것을 다시 찬찬히 시도해본다. 차분함을 되찾고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남편도 갑자기 닥친 상황에 어지간히 당황했었나 보다. 어젯밤 의도치 않게 첫째 훈육을 시도했었던 남편도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자꾸만 ‘안돼 안돼’ ‘하지마 하지마’를 외치고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버렸다고 자책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알아들을 나이도 아니고 괜히 말투랑 표정만 금방 배워서 따라 하는 것 같아.“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20개월 아이가 좁은 입원실에 책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기를 바라는 내 기대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고서는 괜히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고 혼자 힘들어하고 아이를 미워하고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이다. 내가 문제였고 내 문제적 시선과 잘못된 접근이 화근이었는데 말이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소중한 우리 첫째.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라 미안해. 결국 또 할 수 있는 건 혼자 하는 자책뿐이다.


남편과 앞으로의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첫째와 둘째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에 대해서. 20개월 남짓 첫째를 키우면서 느꼈던 바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각자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갖는다. 양육이라는 것. 교육이라는 것. 결코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부가 필요하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육아책에서 ‘어떤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처럼 육아를 위해서도 육아서를 읽고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던 부분이 떠올랐다. 그 책의 저자는 육아서를 몇 백권이나 읽으며 육아에 대해 공부하고 실제에 적용하면서 육아를 잘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어렴풋이 떠오른 그 책의 메시지에 따라 남편에게 육아책 빌려오기 주문을 했다. 가방 한가득 빌려온 육아책을 보니 그래도 일단 마음이 진정된다. 그동안 육아를 너무 얕잡아 봤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공부를 하자. 모든 길은 공부로 통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래, 책을 읽고 공부를 하자. 다짐하니 마음이 편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바른 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같지만 또 다르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둘 이상이 되는 순간 벌써부터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 있다. 나와도 다르고 남편과도 다른, 두 아이 각자는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똑같이 사랑하되 기질과 성향에 따라 다르게 양육할 것. 앞으로 나의 육아는 아이들 각자의 독특하고 유일한 특성들을 알아나가고 발견해 나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인내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사랑하며 많이 존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육아에 대한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평생 끝이 없는 공부가 될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육아서의 첫 페이지를 펼쳐본다. 공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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