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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ora Mar 08. 2020

21세기 시사 교양을 위한 교향곡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과학부터 중세 유럽의 과학까지

 - 시사 교양의 교향곡 첫 번째 악장은 과학이다. 

EPISODE1.

1. 과학의 지금 위치와 역할?


  1) 현대 과학의 극적인 변화의 시간과 사건

  -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과학부터 중세 유럽의 과학까지


  우리가 과학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물리학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기초 과학이라고 하면 물리학, 생물학, 화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에는 기초 과학도 다양한 분야로 쪼개진다. 분자생물학, 수리물리학 등 각각의 과학을 깊이 있게 나눈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물리학을 과학의 중심으로 보는 건 어째서일까? 과학이 중요시되고 시대의 중심이 된 사건을 이야기하자면 종교가 시대의 중심이 되었던 과거를 이야기해야 하고, 그 이전의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철학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종교의 오류를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를 기점으로 확인이 되면서 과학은 종교가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과학이 종교에 대해서 우의를 점할 수 있었던 건 종교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을까? 현대 시사는 물질의 발전과 풍요에 이바지 한 과학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어떻게 변화하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누리는 물질의 풍요와 미래사회의 발전을 이야기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과거부터 현대까지 과학의 흐름과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사 교향곡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학은 그 뿌리를 보자면 철학에 기원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유럽은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고 사고의 중심이 되었다. 종교가 시대를 지배하던 시기는 철학, 과학, 이념이나 모든 것이 종교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의 의미와 결과는 종교가 바라는 방향으로 설계되거나 완성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시대는 이후의 종교가 중심이 되었던 시대와는 달리 철학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과학을 철학의 물음 속에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의 철학이 과학이라는 학문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으나 철학이 과학의 물음을 대신하게 되는 바탕이 된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당시 위대한 철학자들 또는 소피스트들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깊이 있고 논리적으로 사색하게 되었다. 그것은 시대가 가진 개방성과 민주적인(주석 1) 사회의 결정 시스템이 만들어 낸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학의 기원은 철학이다. 이것은 틀리지 않은 명제이고 참일 것이다. 과학은 철학적 물음 속에서 증명할 수 있는 현상과 내용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의 과학적 변화는 무엇이 있으며, 철학 속에서 과학은 어떤 형태로 변화 발전해 왔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우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의 흐름을 보면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대 철학자 '탈레스'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다. '탈레스'의 답은 '물'이었다. '물'은 역동적이고 변화가 무쌍하며 소멸하지 않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 만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의 작용에 의해 태어나고 자라며 소멸한다. 그리고 '물'은 특별한 작용과 법칙으로 만물을 조정한다. 즉, 자연철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자연철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시대의 철학적 사상의 중요한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 자연철학이 어떻게 과학의 발전과 과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 냈을까?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과학이란 학문은 그 법칙과 이론이 증명 가능하며 반론이 가능한 논리적인 학문이어야 한다. 또한 과학은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관통하는 자연철학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이라는 물질의 근본을 규명하고 물질의 운동에 대한 법칙을 증명하는 학문이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자연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고 증명하는 것을 철학의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말하는 자연의 원소에 대한 연구와 자연의 물질들의 운동을 증명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과학은 방법론의 대리자 역할을 했다. 수학이나 천문학을 활용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증명과 규명하는 것은 당시 철학자들이 만든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론 중의 하나이다. 지금처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과학적 도구들이 없었기 때문, 결국 보이는 현상과 자연의 형태를 상상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세균, 바이러스, 원자, 전자 등의 이야기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존재였고, 질병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결과는 상상한 존재들에 의한 작용이었다. 자연철학을 받아들인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은 최종적으로 만물의 근원을 '물', '불', '흙', '공기' 네 가지로 규정지었으며, 이 자연의 4 원소는 근대 과학이 탄생하기 전까지 철학과 과학에서 물질의 근본으로 받아들여졌다. 더불어 '데모 크리스토'는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원자들 간의 상호 관계가 물질을 규정하고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자(주석 2) 가설은 교부철학에서 신의 섭리가 개입되면서 근대 과학이 밝히기 전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자연철학은 자연에 대한 기본 원소를 규정하였고 자연은 이들의 작용에 의해서 생성, 성장, 소멸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연철학자들은 이 원리에 대한 규명과 주장에 대한 증명을 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과학이라는 학문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영역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자연철학에서 말하는 원소들의 운동과 활동에 대한 법칙들을 증명하고 규명하기 위해 철학적 물음에 대한 논리적 학문으로 파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자연 철학으로부터 파생된 그리스, 로마시대의 과학을 규정한다면 천문학(주석 3), 수리학, 물리학과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과학의 산물들은 사물의 움직임을 밝혀내는 물리학과 천체와 별들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천문학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고 규명하는데 이용된 것은 수학적 지식과 발달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천문학의 원운동과 물리학에서 4 원소를 중심으로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수학의 기하학(주석 4) 분야가 발달하고 완성되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과학은 설명한 바와 같이 철학의 물음과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론의 하나였으며, 과학이라는 학문이 별도의 분야로서 발전하거나 분화하지는 못했다. 과학은 철학이라는 거대 틀 안에 존재하는 지류에 불과했다.

우리는 현대 과학의 중심을 물리학으로 생각하지만, 과학적 사고를 제시한 학문의 시초는 천문학과 수학으로 보아야 무방할 것이다. 과거의 천문학을 과학으로의 영역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인간이 사고를 하고 주변을 인식하면서 가장 먼저 연구하고 관심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하늘 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고 거래를 시작하게 되면서 필수적으로 발전하고 연구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수학 일 것이다. 이후 천문학에서 천체의 운동과 지상에서의 물질의 운동은 서로 다른 법칙에 의해 작용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천문학은 교부 철학을 통해 신의 섭리를 규명하는 중심이 되었다. 즉, 그리스, 로마 시대의 다양한 철학적 사고와 연구는 교부철학에 의해서 사장되었으며 세상은 신과 신의 섭리로서 작용한다고 믿게 되었다. 천문학이 교부철학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건 지구가 전체 천체의 중심인 천동설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자연철학을 지나 교부철학에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은 신이 창조했으며 세상은 신의 섭리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교부철학으로 인해서 과학 또한 종교를 근간으로 한 논리를 입증하는 학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동설은 종교가 원하는 신에 의한 인간과 사물의 창조 및 신중심의 세상을 만드는 중요한 논리가 되었다. 천동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주장했으며,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서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도는 모형이 제시되었다. 지금은 직접 관측의 결과와 과학의 발전에 의한 다양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지동설과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내의 천체가 공전을 하며 스스로 자전을 하는 것이 밝혀졌지만, 프톨레마이오스는 당시의 데이터와 관측의 결과를 기반으로 주전원 개념을 도입해 행성의 변화와 위치를 설명했다. 주전원(주석 5)의 도입으로 설명되지 못했던 달과 태양 및 가까운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동설은 이후 1500년간 이슬람과 서구 유럽 사회와 기독교의 교리를 받침 하는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중세 유럽시대 과학은 철학이 종교의 시녀로 불린 것처럼 과학 또한 종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자리 잡았다. 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알아내고 인간이 이치에 간섭하는 것은 악마의 행위이거나 마녀의 사악한 행위로 이단으로서 압박받았다. 이후 16세기 초반까지 중세 유럽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과학의 수준에서 발전하지 못하였다. 이는 과학적 발견의 결과가 이단으로 치부받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의 종교 중심의 사회가 과학의 발전을 더디게 하였으며, 종교가 천동설을 이용하여 당시 사회를 창조와 신이 만든 인간 중심의 사회로 만들었다면 그 암흑의 시대를 벗어나게 된 것 또한 천동설의 오류를 밝힌 결과였다. 코페르니쿠스(1472 ~ 1543)는 16세기 초반 '천체의 운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지구와 모든 행성은 구형이고 지구 또한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행성의 체계를 태양을 중심으로 설계하여 당시 천동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또한 행성의 운동을 완전한 원운동으로 설명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을 도입하였고 이를 통해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이심원과 동시심을 가진다고 하였다. 이 주장은 당시 종교의 전폭적 지원과 지지를 받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행위였고 종교의 입장에선 신을 부정하는 이단 행위였다. 그러나 책의 발간이 그의 임종의 시기와 맞물려 초기 책의 여파는 미미하였고 교회 또한 그를 제제할 시간이 없었다. 이후 17세기 천문학에 있어서 다양한 자료가 뒷받침된 지동설이 등장한다. 요한 케플러(1571 ~ 1630)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 ~ 1642)에 의해서 천동설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는다. 요한 케플러 케플러의 3법칙으로 유명하다. 제1법칙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궤도 운동을 한다. 제2법칙은 면적과 속도는 보존된다. 제3법칙은 타원의 공전 주기 제곱은 장 반경의 세제곱과 같다. 케플러는 자신의 저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론'을 통해 지동설의 근거와 내용 및 행성운동의 3법칙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케플러는 케플러의 3가지 법칙을 연구하는 중 천상에서의 행성의 움직임이 지상에서의 물질의 정량적 측량을 통한 움직임과 같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지상과 천상의 움직임을 하나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케플러 또한 당시 교회의 압박과 탄압을 받았으나, 케플러의 주장은 과학적 자료의 산물로서 대중과 지식층에 널리 알려졌으며 신뢰를 받았다. 또 한 명의 인물인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이단 심판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접하고 그의 주장의 훌륭함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 끝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재정립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한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갈릴레오의 또 다른 과학적 업적은 지구의 낙하하는 물체는(주석 6) 등 가속한다는 사실과, 망원경을 개량하여 태양의 흑점, 목성의 위성, 달의 반점을 발견하였다. 갈릴레오는 중세 유럽의 종교 중심의 과학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은 되었으나, 그 자신은 교회와 대립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대한 해석이나 종교의 교리를 천동설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런 노력에도 지동설은 교회에 있어서는 신을 부정하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졌고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회부돼 가택 연금형을 받는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일화 중 종교재판 후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이야기는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중세 유럽 사회를 경직의 틀에 가두어 놓았던 교회 중심의 구조는, 교회가 추구하던 창조의 근거인 천동설이 거부되고 오류가 드러나면서 사회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오래된 교회의 악습과 페단으로 교회 내부에서도 자정작용이 일어났으며, 교회는 기존의 절대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동안 그리스, 로마시대 철학을 기반으로 한 교회 중심의 철학과 사상은 사실과 경험 그리고 관측에 의한 결과에 의해 깨어지고 새롭게 정립되었다. 이후 사실에 기반한 관측과 결과를 하나의 수학적 이론을 발전시키는 정량적 학문으로 과학은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고전물리의 창시이자 서구 유럽사회의 위대한 과학자로 부르는 뉴턴에 의해서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유럽은 아이작 뉴턴을 기점으로 과학혁명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교회의 힘의 약화로 과학이 시대를 조명하는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과학은 산업과의 융화로 빠른 발전을 하게 되었고 현대의 위치로 오게 되었다.


 - 주석 -

(주석 1) // 단, 당시 위대한 철학자나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사람에게 주어진 계급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형태로서 인정하는 오류를 가지기는 했다. 그러나 노예 계급 이외의 시민 계급 이상에 대해서는 사회 시스템에서 결정을 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를 진행한 사회였다. //.


(주석 2)// 원자 가설의 문제는 교부철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치명적인 부분이 존재했다. 신이 만물을 창조할 당시 원자를 만들었다면, 원자가 움직이는 공간인 진공을 창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원자 가설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단위인 원자가 진공 속에서 서로 간의 상호 활동에 의해 물질을 만들고 움직인다는 가설이다.//


(주석 3)// 천문학과 수학은 과학이라는 테두리가 아닌 삶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학문으로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천문학은 농경이나 수렵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해, 달, 별의 위치와 변화로써 지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활동의 범위를 정해주는 역할로서, 수학은 타인과의 거래나 생활에 있어서 인지 되어야 하는 시간 또는 수량 등의 표기를 위해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분야이다. //


(주석 4)// 자연철학에서 4 원소를 기하학의 다면체로 표현하였으며, 천체의 원운동과 지상의 지형을 관측하고 측정하는데 기하학을 이용하여 규칙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하학의 정리 중 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하였고 유클리드 기하학은 이후 리만 기하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서구 유럽 사회의 기초가 되는 수학의 한 기둥이었다. //


(주석 5)// 주전원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 이유는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행성들의 궤도 때문이었다. 지구 상에서 관측되는 궤도는 태양과 달을 제외하고는 하늘을 바탕으로 직선 운동을 한다. 이를 기하학으로 다시 표현하면 완벽한 원운동이 아닌 타원궤도의 형태를 띤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를 회전하는 원의 중심을 지구가 아닌 지구 근처의 중심을 잡고 이를 이심원과 동시심으로 나누어 궤도가 타원을 도는 것을 원으로 변형하였다. 모든 천체는 지구를 돌지만, 정작 지구의 중심이 아닌 지구 주변의 회전 중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주전원이라 하고 지구는 그 중심을 동시심으로 회전한다. 그럼 타원 운동을 원운동을 기술할 수 있다. 이 결과 태양계내의 행성의 순서 또한 바뀌었다. 순서는 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로 정렬되었다. //


(주석 6)// 등가 속 낙하운동엗 대한 갈릴레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낙체 실험이다. 낙체 실험은 피사의 사탑에서 행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갈릴레오는 그러한 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실험을 했다는 증거나 목격자도 없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시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유낙하 실험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고 실험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 

 

- 갈릴레이의 자유낙하사고 실험 - 만약 같은 크기를 가진 무거운 물체 A와 가벼운 물체 B가 있다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의하면 자유낙하시  A가 B보다는 지면에 빨리 떨어진다. 그럼 이 A와 B를 같이 묶어서 A와 같이 실험을 하면 어떨까? 합체한 A, B는 A의 물체보다 빨리 떨어져야 하며, 늦게 떨어져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A, B는 B가 A보다 가벼움으로 단위당 무게가 가벼워져서 늦게 떨어질 것이고, A에 B의 무게가 더해져서 A보다 총무게가 무거워 빨리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유 낙하하는 물체는 동시에 지면에 닿는다는 가설이 옳음을 증명할 수 있다.



1. 과학의 지금 위치와 역할

    1) 현대 과학의 극적인 변화의 시간과 사건

       -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과학부터 중세 유럽의 과학까지

       - 뉴턴의 고전물리와 20세기 이후의 현대물리

        

    2)  지금을 이야기해주는 현대 과학

       -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 20세기 이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발전

       - 분화와 융합의 현대 과학


    3)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서 과학의 역할

       - 신의 대리를 넘어선 신이 되고자하는 과학

       - 인간과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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