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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an 25. 2022

조심조심, 하지만 두텁게

단단한 돌멩이가 되어가는 과정

티빙에서 방영한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야. 내가 너랑 다시 친구 하면 완전 XXXX다!"
 "넌 원래 XXXX 맞는데?"

 이 살벌한 대화는 최근 방영했던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드라마 대사 중 일부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화기애애하게 술을 먹고 있던 친구 둘은 일말의 사건 때문에 쌍자음이 낭자하는 욕을 하며 싸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지만 그중 한 명이 위험에 처하자 나머지 친구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간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십 대 초중반까지 몇 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동네 친구였던 우리는 매일같이 만났다.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갔다가 정신이 깼다며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해장까지 하고 나서야 개운하게 헤어졌다. 그래놓고는 저녁에 어디냐며 또 연락하기를 일주일에 대여섯 번을 반복했다. 옷을 살 때도 병원을 갈 때도 스무 살 초반 우리 넷은 항상 함께였다.


 그만큼 가까웠던 우리였기에 싸울 때도 진심이었다. 서운하거나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말했다. 별일 없이 잘 이야기하고 넘어갈 때도 있었지만 어떨 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웠다. 목소리를 뾰족하게 높이기도 하고 눈을 삐죽거리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상대의 마음이 다칠까는 안중에 없이 그 순간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온 힘을 다 썼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술 한잔하며 속 얘기를 하고, 지난날의 언행에 서로 사과를 하고, 또 깔깔 웃었다. 물론 사과와 웃음에도 온 진심을 다했다.


 지금까지 그런 허물없는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면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이겠지만 아쉽게도 나이를 먹으며  친구들과는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와중  친구 K만은 계속 같은 동네에 살면서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고 있었다. 물론 K와도   달에   볼까 말까 정도로 만남의 횟수는 변했다. 괜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  일들이 있잖아, 스무  초반과는 다르잖아, 라며 어른스러운 척을 했다. 척이라고  이유는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만  관계에 진심인  같은 작은 서운함이 있었기에.


 그런데 K가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예전이야 오늘 안 만나도 내일 보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여전히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모습에 서운함을 넘어 화가 났다. 하지만 그 감정을 내비치기엔 망설여졌다. 괜히 바쁜데 내가 투정 부리는 거 아닌가, 한 달에 몇 번 보지도 않는데 그 잠깐의 시간조차 망치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예전엔 이런 고민조차 거치지 않고 내 진심 그대로를 내뱉을 수 있던 친구였 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만 챙기던 시절보다 친구의 마음까지 챙기게 된 지금 우리의 관계 거리는 더 멀어진 듯했다.


 그 시절에는 정말 한동안 상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중요하게 살았다. 자존심도 쎄서 조금만 날 건드려도 바로 반응했다. 되는 싸움이건 아니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한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참지 않는 말티즈 같았달까. 나보다 윗사람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지난 몇 년간은 전혀 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서 감정 소모는 나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예의와 존중이 필요한 관계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전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주변에 말랑한 사람들이 늘어나며 나도 같이 흐물해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

 웬만해선 허허실실 웃어넘겼다. 가끔 도가 지나친 장난이 있어도 나쁜 의도는 아니겠거니 하며 합리화했다. 내가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장본인이 되고 싶지 않았고, 많지도 않지만 적지도 않은 나이가 됐다고 혹시나 내가 꼰대 혹은 예절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비춰질까 두려웠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나보다 상대방의 의중을  우선시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아꼈다.  과정에서 상처도 받았다. 내가 조심할수록 상대는 조심하지 않는 관계들이 필연적으로 생겼다. 네네, 하다가도 이건  아닌  같은데? 싶은 순간에 타이밍을 놓치면 티는  내고 속은 요란해진다.  번만  그러면 그땐 진짜  마디  거야, 하고 애써 넘겨 버리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는  어쩔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말티즈 자아가 사회화된 자아한테 조금 짜증이 났나 보다. 나를 조금씩 챙기기 시작했다. 불편한 관계는 굳이 장단 맞춰가며 만나지 않고, 듣기에 불편한 말은 불편하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최소한 웃어넘기는 분위기 때문에 내 가치를 재물 삼지 않는다.



  K는 그래도 12년 짬이 발동했는지 나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캐치했다. 어느 정도 K와의 관계를 마음에서 내려놓은 채로 지냈는데, 술 한잔하자며 연락이 왔다. 그때만큼은 내 일정에 맞추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 속마음을 터놓았다.

듣기에 좋은 건 입 밖으로 꺼내기 쉽다. 하지만 서운함, 불만, 화가 동반된 이야기는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고역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맙게도 친구는 잘 들어주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상황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은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더 고마웠던 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1차원적인 약속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시 마음을 리셋하고 자기를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연말, 연초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지나왔던 여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관계의 안정성에 따라 나의 배려와 조심이 다르게 작용하는 듯했다. 내가 조심하면 함께 조심해주는. 혹은 서로 조심하지 않아도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있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반대로 나의 배려는 당연하고 상대의 배려는 찾아볼  없는. 그런 다양한 관계들.


 그리고  틈에서 이제는   자아가 어느 정도 사이좋게 자리를 잡은  같다. 굳이  해도  말은   줄도 알고,  상황 모든 마음을 쏟지 않고 감정 소모를 줄인다. 거기서 마음을 아낀 대신 내가 챙길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다할  있게 되었다.

원래의 채도 높았던 나만의 색과 무채색이 섞여 점점 이도 저도 아닌 회색깔이 되어가는 기분이기는 한데, 그래도 회색 돌멩이처럼  자신을 위해 많이 단단해져 가는  같다.  돌멩이로 올해에도  좋은 관계들을 조심 조심, 하지만 두텁게 쌓아 올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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