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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02. 2020

드라마를 이끄는 지휘자,
쇼러너(Showrunner)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미드는 여러 명의 작가가 함께 작품을 쓰는 집단 집필 시스템이다. 마치 하나의 소설의 각 챕터를 다른 작가가 쓰듯이, 한 드라마의 각 에피소드를 모두 다른 작가가 쓴다. 즉, 열이면 열 모든 에피소드의 작가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이 다를 텐데, 이쯤이면 드라마의 톤이 흐트러지고, 자칫하면 이야기가 산도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이러한 집필 시스템에 기인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전체적인 드라마의 톤을 하나로 유지할까? 어떻게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 가도록 유지할까?



나를 따르라; 쇼러너(Showrunner)

여러 명이 함께 일하는 곳엔 그 집단을 이끄는 리더가 존재한다. 그리고 산 꼭대기에 올라 리더가 이 산이 아니라고 뒤늦게 얘기할지언정, 리더에 의해서 방향이 정해진다. 구성원의 불평과 불만 여부는 그다음 문제이다. 


미드 작가실에선 ‘쇼러너'가 이 리더의 역할을 한다. 쇼러너에 의해서 쇼의 톤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향이 정해진다. 쇼러너라는 자리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다소 생소한 자리이다.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에리카와 캐이틀린에게 쇼러너에 대해 좀 더 물어보았다. 


에리카와 캐이틀린은 주로 함께 팀으로 작업을 한다. CBS에서 방영된 <The Red Line>이라는 범죄 드라마의 공동 쇼러너로 일했다. 캐이틀린은 CW의 <슈퍼걸(Supergirl)>에서 프로듀서/작가로도 활동했다


에리카/캐이틀린: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쇼러너는 헤드 작가이다. 하지만, 단지 ‘작가'로서의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책임 프로듀서로서의 역할 역시 함께 한다. 쇼러너는 쇼의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한다. 또한, 작가, 촬영 스태프, 편집 스태프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와 배우의 고용도 쇼러너의 역할이다. 물론, 이 과정에 방송사나 스튜디오, 또는 제작사와의 의견 조율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문성환: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한다고 했는데, 방향만 설정하고 그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물론, 자기가 설정한 방향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는 일을 하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또 어떤 일을 하나?


에리카/캐이틀린: 쇼러너는 자신이 직접 에피소드를 쓰는 일도 있고, 직접 쓰지 않더라도 모든 에피소드의 집필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대본 역시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쇼러너는 모든 대본을 확인하고, 노트를 주고, 직접 고치기도 한다. 쇼러너를 거치지 않고 외부로 대본이 나가는 일은 결코 없다.

또한, 쇼러너는 편집에도 깊이 관여한다. 감독이 촬영 후 디렉터스 컷을 마치고 나면 쇼러너가 편집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에디터와 함께 스튜디오와 방송사의 의견을 반영해 가며 편집을 한다. 단순히 편집만이 아니라 음악, VFX 등 포스트 프로덕션 모든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쇼러너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쇼러너는 쇼의 톤을 유지하고,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엇나가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쇼러너는 크리에이티브적인 부분과 매니지먼트 부분 모두를 운영하는 책임을 진다. 말 그대로 쇼(show)를 운영(run)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여러 작가들이 일종의 워크숍 일정으로 미국에 왔을 때 이들과 함께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미드 쇼러너와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쇼러너'라는 자리에 대해 무척 흥미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즉, 우리나라엔 아직 그다지 도입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와 관련 어떤 모습일까? <신데렐라 맨>(MBC)과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SBS) 등을 집필한 조윤영 작가에게 물었다.


문성환: 미국엔 쇼러너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쇼러너는 헤드 작가인 게 일반적이다. 즉, 드라마의 총책임자가 작가인 셈이다. 이는 TV에서 작가의 힘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드라마 역시 작가의 힘이 큰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쇼러너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조윤영: 미국식 쇼러너의 개념이 도입되는 중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크리에이터 혹은 작가팀 명칭을 쓰곤 한다. 방송사에서 납득할 수준의 경력 작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 그룹에 2-3명 정도의 신인작가들이 합류해 집필을 하는 식이다. 최근 시즌제 드라마가 활발해지면서, 해당 작품의 작가가 직접 제작사를 차려 이어지는 시즌을 제작하기도 한다. 


문성환: 미국의 쇼러너는 헤드 작가이지만, 동시에 프로듀서이다. 우리나라도 이 경우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하나?


조윤영: 쇼러너의 경우는 대본의 방향과 제작비 등 제작 시스템의 최종 결정자 역할을 한다면, 한국에서 프로듀서란 대개 돈에 관련된 일을 맡고 있다. 미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과 한국 제작 시스템에서 가장 크게 다른 부분 중 하나가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한국식 ‘프로듀서’는 기획 파트와 제작 파트가 나눠져 있기도 하고, 한 명이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괄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이 혼재되어 있다. 감독이 기획 프로듀서의 역할을 대신해서 대본의 방향성을 함께 의논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시즌제 드라마의 경우, 메인 작가가 최종 윤색 혹은 대본의 최종 출구 역할을 하지만, 제작비 조달이나 제작 시스템의 최종 결정자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최근 작가가 직접 제작사를 차리는 경우가 생겼는데, 작가가 본인 소유의 제작사에서, 본인이 직접 집필한 드라마를 방영하는 케이스는 올해부터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야기의 청사진; 시리즈 바이블(Series Bible)/쇼 바이블(Show Bible)

시리즈 바이블은 한 드라마의 세계를 정리해 놓은 하나의 큰 참고서, 혹은 말 그대로 바이블이다.


해당 쇼의 비전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쇼러너라가 쇼의 전체 톤을 유지하는데 핵심 역할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지 쇼러너만으로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쇼러너도 사람이니 한 작품을 만드는 기나긴 여정에서 삐끗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언가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게다가, 그 안전장치가 글로 쓰인 것이라면 좀 더 확실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조슈아의 얘기를 들어보자. 조슈아는 CW의 <아이좀비(iZombie)>에서 작가로 활동했다.


조슈아: 시리즈 바이블은 메인 캐릭터들이 어떤 여정을 겪고 어떻게 변하는지는 물론, 에피소드의 아이디어, 비주얼 스타일, 음악 스타일 등 모든 부분들이 담긴 문서이다. 


문성환: 말만 들어서는 꽤 두꺼울 것 같은데.


조슈아: 양은 정말 제각각이다. 적게는 6 페이지 정도부터 많게는 65 페이지 정도까지 다양하다.


문성환: 시리즈 바이블은 어떤 용도로 쓰이나?


조슈아: 방송사에 쇼를 피칭하거나, 작가실에서 작가들이 쇼를 이해하기 위한 레퍼런스로 사용된다. 시리즈 바이블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사항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방송사 관계자나 작가들이 쇼를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문성환: 그렇다면 모든 쇼에서 이 시리즈 바이블을 사용할 것 같다.


조슈아: 시리즈 바이블이 쇼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레퍼런스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쇼들이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시리즈 바이블이 쓰인 쇼와 쓰이지 않은 쇼를 모두 경험했다. 시리즈 바이블이 가장 효과 있게 사용되는 경우는 이야기가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거나, 이야기의 장르가 판타지, 혹은 사이파이인 경우이다. 



시리즈 바이블의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곳으로 가보길 권한다. 10 TV Series Bibles You Must Read. 이곳에서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인기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시리즈 바이블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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