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아직 우편을 이용한 DVD 렌털 서비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넷플릭스는 대여 연체료가 없었다. 일주일에 때론 영화를 열 편도 보던 시절이라 무척 혹했던 조건이었다. 아직 넷플릭스가 시작한 지 3-4년쯤 되었을 즈음 이야기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가끔 아내와 이야기한다. 내가 그때 넷플릭스 주식을 샀어야 했다고.
내 쓰린 가슴을 아는지 모르는지, 넷플릭스는 이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스트리밍 서비스이고, 유니버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와 같은 스튜디오로 발전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TV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훌루, 아마존, 디즈니+와 같은 플랫폼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아래는 이런 플랫폼의 변화가 스토리텔링에도 영향을 미칠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나눈 현직 작가 조슈아, 캐틀린, 그리고 에리카와의 짧은 대화다.
조슈아 - iZombie 작가
캐틀린 - Supergirl 작가, The Red Line 쇼러너
에리카 - The Red Line 쇼러너
할리우드 스토리텔링은 아시아나 유럽 등 다른 곳의 스토리텔링과 다를까?
조슈아: 할리우드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돈이다. 이 이야기를 만드는데 얼마가 들것인가의 문제다. 방송사들은 대체로 이미 성공한 이야기와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하지,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리부트와 리메이크가 많은 이유다. 이건 성공이 증명된 이야기니까.
하지만, 최근 TV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일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케이블 서비스들이 좀 더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이때 개개의 작품 시청률이 많이 나오느냐 아니냐는 예전만큼 큰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시청자들에 맞는 다양한 작품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선 시골에 있는 엄마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필요하고, 뉴욕에 사는 젊은 도시인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필요하다. 무척 여러 종류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식에 맞춰 쉽게 찍어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작가들이 용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할 시대가 왔다. 난 이게 어떻게 될지 흥분된다.
조슈아 말처럼 기존의 전통적인 TV 플랫폼이 아닌 넷플릭스를 대표로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콘텐츠가 다양해지는 듯하다. 이젠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가 사실상 주류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한데, 이러한 플랫폼의 변화가 스토리텔링에도 영향을 미칠까?
에리카/캐틀린: 언제 어디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어떤 플랫폼에서 이게 이야기되는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스토리텔링의 스타일과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엔 TV 드라마들이 대부분 매 회가 독립된 에피소드로 펼쳐지는 형식이어서 시청자들이 이에 익숙했다. 하지만, 스트리밍 TV가 대세가 되면서 시청자들은 이제 좀 더 긴 호흡의 TV 드라마에 익숙해졌다. 이제 시청자들은 그동안 이야기의 미스터리 같은 것에 신경을 썼던 것만큼, 인물들의 감정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정말 좋은 효과다. 인물의 감정 변화야 말로 TV가 어떤 다른 매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반면에, 콘텐츠가 우후죽순 격으로 무분별하게 늘어남에 따라 우리가 정말 믿고 볼 수 있는, 또 (작가로서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일할 기회는 확실히 많아진다.
조슈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공중파 드라마는 회 당 방송 길이가 정확히 정해져 있고, 중간 광고가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는 등 엄격한 틀에 맞춰서 만들어진다. 작가는 시나리오를 이 틀에 맞춰 써야 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런 부분에 있어 좀 더 유연하다. 이번 회는 25분이고, 다음 회는 32분이 될 수도 있다. 그 회의 이야기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면 길이가 어찌 되든 문제가 없다. 이는 작가가 원래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지키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아까 말했다시피 공중파 드라마는 중간 광고가 들어간다. 이때 광고가 나가는 동안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광고로 넘어가기 직전, 각 액트의 끝에 클리프행어를 넣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작가가 글을 쓸 때 구조적으로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리밍 서비스 드라마는 이런 구조적인 제한에서 자유롭다.
그런 면에선 영화와 비슷해졌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매 회 단 하나의 클리프 행어를 향해 써야 한다는 말인데, 혹시 이게 더 쓰기 어렵진 않나?
조슈아: 대부분의 TV 드라마는 그게 공중파이건 스트리밍이건, 중간 광고가 있건 없건 매 회 하나 이상의 클리프행어가 들어 있다. 차이점은 공중파에서는 구조적으로 중간 광고 이전에 클리프 행어를 반드시 넣어야 하고, 스트리밍에서는 쇼러너의 판단에 따라 이야기를 가장 잘 서포트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이 쓰기 더 쉽다거나 어렵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나름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조슈아가 이야기 첫 시작에서 할리우드는 돈 문제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리부트나 리메이크에 더 열려있다고 했다. 갈수록 리부트나 스핀 오프와 같은 식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일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왜 그럴까? 혹시 이게 오리지널 아이디어의 부재를 말하는 걸까?
에리카/캐틀린: 이야깃거리, 혹은 네가 말한 것처럼 아이디어가 바닥 날 일은 없다. 이 땅에 사람이 사는 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존재한다.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다양한 스토리텔러들에게 기회를 줄수록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익숙한 내러티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진 이야기들이 태어날 것이다.
리부트와 스핀오프가 범람한다. 이는 위험 감소와 돈이라는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적용된 결과이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보자면 예전의 이야기를 지금의 배경 속에서 새롭게 생각하고 지금에 맞게 다시 펼쳐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