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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15. 2021

현장의 그들도 행복하면 좋겠다

블룸하우스의 제작 방식에 대한 글을 읽고

미국의 영화 제작사 블룸하우스(Blumhouse)의 제작 방식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2018년에 쓰인 이 글에서 저자는 블룸하우스를 신흥 호러 영화 명가로 규정하고 이 영화사가 제작하는 영화가 왜 인기를 끄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영화를 제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의 첫 번째 파트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블룸하우스표 영화의 특징은 유익하다. 훌륭한 인사이트를 엿볼 수 있다. 글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두 번째 파트에서 이야기하는 그들의 제작 방식에 대한 저자의 호의적인 내용을 읽는 동안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편집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었던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잠시나마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불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블룸하우스의 제작 방식, 다시 말해 블룸하우스의 수장 제이슨 블룸의 제작 철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감독의 창작권을 보장한다. 둘째, 저예산 원칙을 지킨다. 셋째, 성공한 공포 영화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저예산 제작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만들어낸다는 그들의 원칙에 대해 조건 없이 호의적으로 대하는 글의 태도였다.


저예산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스태프들의 임금 역시 최소한으로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어디서나,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한 가지 진실이 있다. 예산을 줄일 때 그 마이너스는 가장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이루어지고, 관리자와 경영자들의 주머니는 그대로라는 진실이다. 기업에서 경기가 안 좋다며 올해 임금을 동결한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연봉 10억을 받는 윗사람들의 연봉을 1억만 깎아도 임금 동결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싸한 자기 집을 가진 연봉 10억을 받는 사람의 임금 동결과 월세를 내며 연봉 3,000만 원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임금 동결을 같은 것으로 볼 텐가? 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할 때, 어떤 이들은 졸라맬 허리띠조차 없다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저예산 제작, 예산 절감을 통해 발생한 최대 수익은 결국 다시 관리자와 경영자의 주머니만 불리고, 그렇게 그들과 노동자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진다.


블룸하우스는 최저 임금만을 지급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현재 기준 저예산 영화인 Tier 1 영화 어시스턴트 에디터 최저 임금은 주당 약 $1,300이다. 여기에서 세금을 빼면 실제 수령액은 대략 $900 정도다. 한 달에 약 $3,600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우리나라 식으로 생각하면 한 달에 약 4백만 원이니 괜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알다시피 월세의 나라다. L.A. 원베드룸 평균 월세는 2020년 9월 기준으로 약 $2,230이다. 여기에 기본적인 식료품비, 공과금, 통신비 등을 생각한다면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 한 월 $3,600으로 삶을 이어간다는 게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라면야 어찌어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이 있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나 역시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겟 아웃>이나 <미나리> 같은 영화에서 들어온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너무나도 탐나는 작품이었지만 내 수입만으로 가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개월 동안 감내할 수 있는 일이 도저히 아니었다.


블룸하우스가 영화 지형도에서 다양성을 넓히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TV 드라마로 진출하여서도 <Sharp Objects>와 같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지인들끼리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블룸하우스와 한 번 일한 사람은 두 번 일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대부분이 블룸하우스에서 일하는 것을 지인에게 추천하지 않는다고. 지인들이 나에게 블룸하우스 작품에서의 기회를 알려올 때마다 늘 같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로 시작하는 일종의 경고가 늘 뒤따랐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나의 좁은 경험일 뿐일 수도 있다. 블룸하우스의 작품 중에서도 규모가 더 큰 작품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 일수도, 다른 포지션에서는 있지 않은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즐거운 관객만큼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즐겁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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