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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ul 27. 2023

끈기가 필요하다

에디터에게 묻다(2) 리차드 피어슨과의 대화

리차드 피어슨(Richard Pearson)

<언차티드> <원더 우먼 1984> <콩: 스컬 아일랜드> <어카운턴트> <아이언맨 2> <007 퀀텀오브솔러스> <본 슈프리머시> <맨 인 블랙 2>


<원더 우먼 1984>

어떻게 영화 산업에서 일하게 되었나요그리고  많은 분야 중에서 어떻게 편집을 선택했나요?


어릴 적부터 늘 필름메이킹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서관에서 슈퍼 8이나 8 밀리미터 필름을 빌릴 수 있었어요. 그걸 집에 가져와서 현미경으로 보곤 했죠. 집에 프로젝터가 없었거든요. 나중에 집에 프로젝터가 생기고, 버스터 키튼의 영화와 같은 코미디 영화를 빌려다 봤어요. 앞뒤로 계속 돌려보면서 어떻게 편집했는지 살폈죠. 사람이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뛰는 장면 다음에 중간을 건너뛰고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어떻게 바로 잇는지와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런 걸 살펴보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을 가면서 TV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해졌어요. 그리고 결국 제가 살던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한 TV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죠. 작은 방송사였기에 이것저것 다했어요. 사운드 리코딩을 배웠고, 편집을 배웠죠. 촬영도 배웠어요. 방송국 내의 일종의 작은 프로덕션에서 지역 광고나 다큐멘터리도 찍었어요. 그렇게 한 2년 정도 일하다 문득 이건 내가 앞으로 내 인생의 남은 45년 동안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TV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더 큰 야망이 있었거든요. 그 후 영화학교에 잠시 다녔는데, 그러다가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지금 학교에 다니느라 쓰는 학비를 들고 L.A.로 가는 거라는 걸 깨달았아요. 아내와 미네아폴리스에서 결혼했고 우리 신혼여행은 L.A. 까지 차로 이사하는 걸로 대신하게 되었죠.


한국에서 일하면서 미국과 다르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감독에게 처음 에디터스 컷을 보여줄 때 신의 순서를 바꾸거나 대사를 바꾸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그런 걸 기대하기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전 에디터스 컷을 할 때 감독과 이미 논의되지 않은 한 대사를 삭제 혹은 변경하거나 신의 순서를 바꾸는 등 구조를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지점에선 감독이 자신이 처음 촬영에 나서면서 의도했던 것들을 그대로 볼 필요가 있거든요. 제게 뭔가 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따로 옆으로 빼놓았다가 나중에 보여줍니다. 내 경험상 에디터스 컷 단계에서 에디터가 이리저리 마음대로 바꿔서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 증명하려고 하는 건 안 좋은 생각이에요. 감독은 먼저 자기가 생각했던 게 어떻게 보이는지 보고, 스스로 어떤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고 어떤 부분이 아닌지 판단하고 싶어 해요. 좋은 감독들은 자기만의 강한 관점이 있어요.

<본 슈프리머시>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얘기해 볼까요? 편집은 촬영과 함께 시작됩니다. 촬영 기간 동안 당신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뭐죠?


데일리스를 리뷰하는 일이죠. 보통 어시스턴트 에디터에게 그날 들어온 데일리스 전체를 하나의 시퀀스에 올려달라고 부탁해요. 솔직히 말해 샷을 하나하나 다 보는 건 아니에요. 일단 빠르게 훑으면서 전체적으로 어떤 샷들이 있는지, 연기는 어떤지 파악해요. 아, 이런 투 샷을 찍었군, 마스터 샷은 이것과 이것 두 가지로 찍었군. 이런 것들을 빠르게 훑으면서 파악해서 머리에 넣어놔요.


이 과정을 끝내고 나면 바로 신을 편집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커버리지가 있는지 파악이 되었으니 신을 어떤 식으로 조립할지 머릿속에 이미 정리가 되었거든요. 편집을 하다 가끔은 막다른 길에 들어서기도 하지만 이 일을 제법 오래 하다 보니 이젠 그런 일이 예전처럼 많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모든 샷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오해는 말아요. 여전히 모든 샷을 프레임 하나하나 빠지지 않고 확인합니다.


특별히 복잡한 신인 경우엔 어시스턴트 에디터에게 특정 대사가 나오는 모든 테이크를 하나의 시퀀스로 묶어달라고 부탁해요. 이렇게 하면 혼자 편집할 땐 물론이고, 감독이 특정 대사를 배우가 다른 테이크에선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궁금해할 때 쉽게 보여줄 수 있죠.


데일리스를 보고 나면 이제 편집을 하는데어떤 식으로 신을 편집해 나가나요?


TV 방송국에서 일할 때였어요. 처음 촬영을 나갔는데, 그땐 촬영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함께 일하는 사람이 촬영을 하는 방식엔 두 가지가 있다고 내게 알려주더군요. 그림을 볼 때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보는 방법이 있고, 반대로 부분들을 모두 보고 서서히 전체를 보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촬영도 마찬가지라고 말이에요. 이 말을 아직도 늘 간직하고 있어요.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순 없겠지만,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정보를 알려줄 건지에 대한 고민과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편집은 결국 특정한 이야기나 신이 어떻게 이야기되는지, 내 시점, 혹은 관점은 뭔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관객에게 표현하는가의 문제죠.

<어카운턴트>

미래의 에디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이 일은 끈기가 필요해요. 계속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L.A. 에서 드라마 일을 하기 전에 뮤직비디오와 광고 편집을 했어요. 내가 드라마 편집을 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들 뮤직비디오에서 TV 드라마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죠. 하지만 난 계속 노력했고, 결국 성공했죠. 그렇게 2년 정도 TV 드라마를 하다가 이번엔 영화가 하고 싶어 졌어요. 사람들은 다시 전과 똑같은 말을 했어요. TV에서 영화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난 정말 정말 영화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엄청난 노력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죠. 그런 끈기가 필요해요. 고집스럽게 계속하는 끈기 말이에요. 쉽진 않아요.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성공하거나 엉망진창이 되거나 둘 중 하나죠.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괜찮아요. 최소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늦은 시간까지 감사합니다


리차드 피어슨과 제가 나눈 이 대화의 전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세 차례로 나뉘어 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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