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것도 아닐걸
알람이 울리고
알람을 끄고
개운하지 않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상쾌하지 않은 마음을 애써 가다듬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물을 마시고
통근버스를 타고
창 밖에 만개한 벚꽃에 눈길도 주지 않는 바스락거리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봄날의 태양도 커튼 뒤로 넘겨버리고
정돈되지 않은 마음속에 막연한 불안과 대상이 모호한 원망과 처음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자기혐오를 한 아름 안은 채
허구와 거짓, 위선과 가식, 생존을 위한 질서의 애매한 경계를 넘나들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바람이 부는 마음은 회사를 벗어나며 조금 달래보고
나의 오늘이 가장 무거웠던 양 너에게 또 한바탕 쏟아낸다
그러고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잠시 착각하며 즐거워하겠지
불면의 밤을 핑계 삼아 술을 한 잔 할지도 몰라
목련은 벌써 떨어져 검게 짓이겨졌고
벚꽃은 비와 함께 낙하하겠지
황사가 올 테고
봄은 그렇게 야속하게 사라질 거야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울 걸로 예상된다는 일기예보가 나오겠지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가겠다며 한국의 여름보다 더 더운 나라로 떠날지도 몰라
국내 유명 관광지의 바가지 상술이 여전하다는 뉴스도 나올 테고
부질없던 설렘은 해수욕장이 폐장하면서 사그라질 거야
새삼 현실을 직시하면 설악산에는 벌써 단풍이 들고 포장마차마다 전어를 구워 낼 거야
그때쯤, 요즘 입는 재킷을 다시 찾아 꺼내 입을 거야
하늘이 파랗다며 한번쯤은 동물원을 찾겠지
앗, 눈이다
첫눈이야
우리는 또 첫눈이라며 괜히 그 사람을 불러내
크리스마스이브의 괜한 기대는 나이가 들어도 식지를 않아
바보 같다
각종 시상식을 보며 MC가 외치는 카운트다운을 멍청하게 따라 읊으며 내년을 맞을 거야
달라지는 건 없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건네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미워할 테고 어쩌면 내 덕담으로 복을 받은 사람을 시기할 거야
북한은 또 미사일을 쏠 거야
여당과 야당은 여전히 서로에게 삿대질을 할 거야
부모님은 여전히 우리를 걱정하시겠지
지겹도록 해왔지만 우리는 또 상사를 욕하고 회사를 욕하겠지
행복해지고 싶다며 로또를 사기도 할 거야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