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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rawing Hand May 15. 2021

014 그냥 친구

줌으로 만나는 우리, 어느새 1년

친구들과 수다 모임을 하는 금요일 오후다. 오후 2시쯤 카톡으로 오늘 모임을 다시 한번 일러줬다. 원래 매주 금요일마다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뀐 후로 날짜 확인을 한번 더 한다. 


"오늘 모임 잊지 않았지? 이따가 만나."


스페인 시간으로 3시로 설정해둔 줌 미팅을 시작한다. 한국 시간으로는 밤 10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들어오기 좋은 시간이라고 해서 10시다. 물론 아이를 재우는 건 실패하기 일쑤고 그러다가 자신도 아이와 함께 잠들어 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적당한 시간이란다. 베트남은 저녁 8시라 가족들 저녁을 챙기고 먹는 분주한 하노이에 사는 친구까지. 어쩌다 보니 세 나라의 시차를 고려해서 그나마 만나기 좋은 시간을 고심한 게 이 시간이다. 수다 모임에 들어오기까지 챙겨야 하는 것도 많고 이겨내야 하는 방해꾼도 많은 내 친구들이다. 한국은 밤 10시. 베트남은 저녁 8시. 그리고 스페인은 오후 3시. 이렇게 다른 시간을 살지만,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만난다. 줌으로 만난다. 


원래 온라인으로 드로잉 워크숍을 하려고 유료 가입을 한 ZOOM인데 매우 오랫동안 드로잉 워크숍은 하지 않으니까 그냥 친구들과 수다모임 하려고 돈을 내는 셈이다. 물론 드로잉 워크숍도 해야지, 생각만 하지 말고 해야지, 가을에는 하겠지? ZOOM 서비스를 무료로 쓰면서 한 시간에 한 번씩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그냥 카페에서 친구랑 만나서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 사 먹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Friendship 1 & 2 By The Drawing Hand, 2014



이렇게 만난 지도 어느새 1년이다. 작년 5월 9일에 처음 수다모임을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던 우리는 줌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자고 했다. 해외에 사는 우리는 어쩔 수 없지만 같은 한국 땅에 살면서도 만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니 어떻게라도 만나고 싶었다. 코로나가 일상을 바꾸고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매주 금요일마다 만났다. 화면 안에 나를 포함한 9명이 모인다. 그냥 얼굴 보는 것만 봐도 좋다. 우리 대화는 귀여운 방해꾼의 잦은 등장으로 순탄치 않다. 못 본 사이 또 훌쩍 커버린 내 친구의 아들 딸들이 엄마가 뭘 하는지 궁금해한다. 가끔은 한 화면 속에 온 가족이 다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날은 서로 인사만 나누다가 한 시간이 지난다. 하기사 아홉 명쯤 되면 오프라인으로 만나도 대화를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정작 대화는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리운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좋다. 


한 때 우리에게도 매일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 조금 크고 나서는 주말이면 만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 달에 한 번쯤. 이젠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이려면 일단 연간 프로젝트다. 가끔 이 친구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하다. 서로 알게 된 계기 혹은 친구가 된 시기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남편에게는 이 친구들은 'childhood friends'로 통한다. 물론 이 그룹에 속해 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와 우정을 쌓은 다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미안하다. '어린 시절 친구'는 남편의 기억을 돕는 말이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동창' 혹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라는 표현도 우리와 맞지 않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도 나머지 8명과 언제 친구가 되었는지 다 다른데, 이 중 가장 먼저 친구가 된 건 내가 9살 같은 반이었던 A고, 가장 나중에 친구가 된 건 고등학생 때 다닌 학원에서 만난 J이다. 이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아니다. 복잡하다. 그러니까 초등학교(물론 우린 국민학교 졸업생입니다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학원, 교회까지 만난 곳이 다양하지만 9명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시기와 장소가 없다. 하는 일도 제각각이다. 결국 거주하던 지역으로 보니 '동네 친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런데 동네 친구는 보통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기반으로 말하지 않나. '동네 친구'였던 9명 중 어느 누구도 그 동네에 살지 않는다. 서울 노원역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구 동네 친구' 아홉 명은 하나 둘 동네를 떠났다. 강릉, 전주, 천안, 의정부, 강남, 하노이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2년 전에 비토리아로 왔다. 상황이 이러니 이런저런 수식어는 사라지고 '친구'만 남았다. 그래, 우린 그냥 친구지. 코로나로 잃은 것도 많고 바뀐 것도 많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건 친구, 거리도 시차도 극복하고 만나려 노력하는 우리다. 10년, 20년 시간이 흐르고 그때까지도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한다면 '평생 친구'로 남겠지? 그것도 괜찮네, 어쨌든 난 그냥, 우리가 친구라 좋다. 


5월 모임에 같이 못한 N과 J.

별 일은 없는 거지? 

다음 달 모임은 6월 25일이야. 

건강하게 지내다가 만나자.



더드로잉핸드 The Drawing Hand

그림 그리는 삶. 

현재 스페인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중.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thedrawinghand.viva

그라폴리오 : https://grafolio.naver.com/jieunkim

유튜브 : http://youtube.com/thedrawing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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