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May 08. 2019

1. 시작은 그러하였다

온 우주가 나를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UNOCA의 한 컨테이너 안 침대 위이다. 분명 2년 전에 우크라이나로 이주하였을 때, 글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브런치 계정을 만들었었는데, 2년 동안 글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이주하게 되었다. 앞으로 올릴 글 중 우크라이나 관련 글들은 과거의 경험이고, 아프가니스탄에 관련된 글은 현재 진행형의 글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시작은 2018년 10월의 어느 날 우크라이나 유엔여성기구 근무 시절에, 오퍼레이션 매니저가 내가 11월에 이스탄불에서 하는 '젠더 피스빌딩' 트레이닝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간다고?" 

    "응 네가 간다고" 

    "누가 그래?" 

    "컨트리 랩 (Country Representative) 이 그래" 

    " 아 그럼 가야지..."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생각 없이 여행 패키지를 준비하고 (보통 여행 담당자가 항공과 숙박을 예약하고 일비 DSA 관련 서류를 준비해 주면 나는 확인하고 서명하고 TRIP 시스템에 내 여정을 공유해서 UNDSS로부터 허가를 받는다), 11월 중순에 이스탄불에 갔다. 트레이닝은 유익했다, 젠더 관점으로 프로닥 Project Document 쓰는 법, 젠더 관점의 모니터링 그 당시에 하고 있었던 업무 관련 트레이닝을 나흘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다. 얼마나 열심히 했냐면, 내가 있었던 이스탄불에 있었던 총 5일 동안 내가 먹은 건 호텔 밥 밖에 없었다, 내가 게을렀다고도 할 수는 없는 게, 비가 엄청 많이 와서 트레이닝 끝나고 나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날씨의 문제였다, 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트레이닝의 다른 좋았던 점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은 다 유엔 젠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그게 시작이었다. 소말리아, 레바논, 조르단, 아프가니스탄, 시에라리온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일하는 젠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 그중 아프가니스탄 유엔개발계획 직원도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계약기간은 2019년 2월까지였다. 그래서 12월 1월 열심히 다음 직장을 찾고 있던 중 아프가니스탄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젠더 프로그램? 근데 아프가니스탄이잖아, 근데 젠더잖아?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이잖아, 근데 프로젝트 매니저 포지션이잖아?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이잖아, 이러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레이닝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연락하였다. 그 친구의 답변은 '그거 내가 하는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매니저 구하는 거야, 너 하고 싶다고?'.... 아 그렇구나.. 그러면서 '우리 프로젝터 매니저 없는 지 오래되어서, 빨리 구해야 해, 너 이력서 있으면 바로 보내봐'. 사실 아프가니스탄에 갈까 말까? 하는 마음도 없이 뭐 일단 시도나 해보자 하는 마음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뒤에 HR 담당자가 ' 우리 스카이프로 전화하자!' 그래서 아 그냥 나에게 전반적인 것을 이야기해주려는 것인가 보다, 미국처럼 인포메이셔날 인터뷰를 하나보다! 하고 스카이프를 걸었는데, 어, 그러니까, 그게 면접이었다. 진짜 인포 메이 셔널 인터뷰인 줄 알고, 하나도 준비 안 하고 아침 8시 우크라이나 시간으로 회사 출근하자마자 신나게 전화 걸었는데 면접이었다. 아마 여태껏 했던 백번 넘는 인터뷰 중에 가장 생각 없이 했던 인터뷰였다. 


두 번째. 그 당시 사무실에 디테일드어사인먼트로 (한 직원이 그만두면 다른 직원을 찾을 때까지 다른 국가 사무소에서 직원을 2-3개월 빌려오는 시스템) 유엔여성기구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하던 프로젝트 매니저가 우크라이나에 와 있었다, 인터뷰하자마자 쫄래쫄래 그 방에 가서 '나 인터뷰했어! 아프가니스탄 유엔개발계획 젠더 프로그램, 근데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가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어', 그랬더니 '가봐! 어차피 여기 2월이면 끝난다며, 가면 재미있을 거야, 내가 거기 유엔개발계획 시니어 매니저랑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게'. '아냐 괜찮아 절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마'. 뭐,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안 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다음 주에 난 유엔개발계획 시니어 매니지먼트로 부터 메일도 받았다, '네가 그 제인이구나!'. 아니 저기요 저 아직 가고 싶다고 마음의 준비 안 했는데요...


세 번째. 우크라이나에서 만나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M이  있는데 그 친구 역시 2월 이후에 다음 발령지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요르단, 베트남 여러 지역이랑 면접하고 진행하는 거 같더니만, 3개월에 한 번 홈 리브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정하였다 (참고로 유엔은 아프가니스탄에 근무하면 6주에 한 번 1주일간 휴가이다 Rest and Recuperation 즉 RnR이다, 그 휴가는 30일간의 정기 휴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친구가 일하는 기관은 3개월에 한번 집으로 보내준다.)그리고  둘 다 아프간에 간다는 이야기로 엄청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프간에 간다고? 가서도 친하게 지내자, 비록 둘이 다른 컴파운드에 있겠지만 나는 M의 컴파운드로 갈 수 있을 거야! 이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스탄불에서 만난 아프간에서 근무하는 친구 + 아프간에서 근무하다 온 프로젝트 매니저 + 아프간에 가게 된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친구, 이렇게 갑자기 세명이 나를 아프간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온 우주가 나를 아프간에 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리고 언제나 나의 결정을 150% 지지하는 우리 남편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숙소 침대에서 첫 브런치 글을 전송하려고 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