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8년 만에 온 현자 타임
첫째가 9살, 둘째가 7살.
첫째 출산 후 일을 그만두었고, 그러고 2-3년 뒤에야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에 1-2일만 일을 하는 생활을 어언 6년째 하고 있다.
생각을 해보면 나는 거의 만 8년, 횟수로는 9년간 대부분의 시간에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출산 후 일을 그만둘 때,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애 좀 키워놓고 다시 일 시작해야지.
애 보고 살림하는 건 잠시 하는 거야.
애 좀 크면 다시 일을 할 거야.
내가 원래 할 일은 일이지, 집안일이 아니야.'
그래서 항상 밥하고 살림하는 걸 대충 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얼른 커서 엄마 일 좀 하러 나가자.' 이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들이 커서 일을 하면 내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만의 생각 속에서 벌써 9년의 시간이 흘렀다.
물론 파트타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슈퍼비전을 열심히 했고, 나만의 길을 찾아 나가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9년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잠시 애 키워놓고 다시 일 시작하려고 했다면,
원래 내가 할 일은 집안일이 아니고 사회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출산 후 1-2년이 지나지 않아 바로 일을 본격적으로 했어야 했다.
이 얼마나 슬픈 시간을 보내었는가.
8년을 넘게 '이건 진짜 내가 할 일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매일 그 일을 했다니.
정말 슬프기 그지없는 시간이다.
매일 남의 일하는 것처럼,
매일 불만을 가지고,
슬프게, 그렇게 하루하루 살았다.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동시에 내 아이들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루하루빨리 아이들이 크기만을 바란 그 시간들을 갑작스럽게 되돌아보니,
순간 스스로 '미쳤다 미쳤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제정신으로 온전히 살지 못했구나 싶었다.
8년이면 강산이 한번 바뀌기 직전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주부로서의 생활을 많이 했다면,
직업전선에서도 나는 별로 메리트 없는 사람이다.
나이는 많고 내세울만한 경력은 딱히 없다.
누가 나를 마음에 들어 뽑아줄까.
남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그저 그런 일자리는 갈 수 있을지언정,
좋은 조건의 괜찮은 자리는 나보다 경력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의 것이었다.
이제야 현실적으로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본 것이다.
8년의 시간은 고통과 불만의 시간이었고,
안타까운 시간이었고,
내가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나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한 것인가.
그리고 직업적으로도 그리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그저 그런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을 그만하겠다는 것.
바닥에서 스스로 나의 경력과 일을 만들어가겠다는 것.
매 순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것.
그리고 집안일과 아이들 키우는 건 원래 내 일이라는 것.
내가 아무리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라고 아이와 가족을 위해 밥 한번 안 짓겠나?
공부를 안 봐줄까? 집안 정리는 안 할까?
그건 원래 나의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이 일이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근데 그 일을 너무 오래 하고 있다면.
어쩌면 원래 그게 당신의 일일지 모른다.
피할 수 없기에, 결국엔 내가 하는 일이 맞기에 그렇게 오래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맞다.
오래 하면 당신은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슬픈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