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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거북이 Oct 03. 2020

요즘 엄마들의 정체성

심리검사를 통해 세상보기

심리검사 중에 문장완성검사라는 것이 있다.

문장완성검사는 문장 중 앞부분만 제시되고 뒷부분은 빈칸으로 남겨져있다.

그래서 앞부분을 읽고 떠오르는 말이나 생각을 그대로 작성하여 나머지 뒷부분을 완성하는 검사이다.  

그 검사 중에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와 같이 과거의 아쉬운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문장들이 있다.


내가 처음 수련을 받았던 2000년도 중후반에는 이런 문항에는 대부분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당시, 유치원이나 초등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60-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어른이 되고 보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를 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2010년대 중반 즈음, 유치원/초등생을 키우는 부모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70년대 후반, 80년대에 태어난 부모들이었다. 이들은 생각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들 중에 '결혼한 것이 잘못'이라거나 '결혼 않고 혼자 살고싶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렇다고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남편과 엄청 싸워서 부부 사이가 위기인 것도 아니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경제생활을 못하는 것과 같이 결혼생활에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도 일하고 너도 일하는데 왜 나만 독박 육아냐.' '나도 일할 줄 아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원치 않게 경력단절이 되었다.' '남편은 자기도 일이 바쁘다고 늦게 들어고 육아나 살림은 나몰라이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10여 년 전, 60-7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은 결혼하여 경력단절이 된 것에 대해, 혹은 독박 육아를 하는 것에 대해 그리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때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여자는 당연히 일을 그만두고 살림과 육아에 올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80년대 태어난 여성들은 다른 것 같다. 그들은 형제자매도 1-2명밖에 없었고, 여자라고 공부를 적당히 하고, 취직을 못해도 된다고 생각지 않았다. 이들은 학교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경쟁을 했다. 남자는 실과, 여자는 가정만 배우지 않고 남녀 모두 같은 과목을 배웠다. 그리고 남녀 공학인 학교만 설립되어서 남자, 여자 같이 수업을 듣고 같이 공부를 하고 같이 경쟁하였다. 여성은 남자보다 성적도 더 뛰어났고(물론 남학생들은 뒤늦게 빛을 발하는 경우가 허다하기도 했지만), 남자애들보다 더 잘했고 똑 부러졌다. 입시, 취업 모두 '네가 여자니까 대충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받지 않았다.


이들은 나 ooo이라는 이름 석자를 걸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뼈 빠지게 취업준비를 했고, 사회생활을 했다. 누구도 '너는 앞으로 결혼하면 집에서 살림하고 애 봐야 해. 그러니까 공부 대충 해, 직장? 안 가져도 돼.' 이런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주는 것은 성차별적이고 구태적인 의식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삶은 60년대 생이든, 70년대 생이든 80년대 생이든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게... 안타깝게도 아이를 낳는 자는 여성이며, 아이를 키우는 육아는 아무리 부족해도 성인 1명의 희생이 최소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엄마라서 당연히 일 그만두고 애 키워야 된다는 건 옛날 발상이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처럼 아이를 낳은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 자연스러운 섭리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로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노동과 부담이다. 나를 갈아 넣어야 하는, 한마디로 나라는 ooo이라는 정체성을 뒤엎는, 완전히 없앴다가 새롭게 만드는 경험이다. 그런데, 이렇게 숭고한 일을 사회와 세상은 경제적, 자본주의적, 제도적 관점에서 볼 때 '경력단절'로 '아무런 의미 없음'으로 가치를 바닥 저 밑으로 던져놓았다.


사회의 한 구성원인 ooo으로 30년 넘게 살아온 여성들은 한순간에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아이를 낳아 몸도 성치 않은데 왠 쪼끄마한 아기가 내 옆에 붙어서 피와 살을 쪽쪽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게다가 30년 넘게 만들어온 나라는 사람은 어디 갔나? 아무 의미가 없다. 회사는 출산휴가 3개월만 주고 육아휴직은 안 된단다. 결국 100일도 안된 핏덩이가 눈에 밟혀 회사를 그만두지만, 그동안 쌓아온 나라는 사람은 어디 갔을까... 삶에 회의가 느껴진다. 운 좋게 1년 육아휴직을 받고 복귀를 해도, 1년 쉬었다고 젊은 남자 후배가 선임이 되어 있고 승진에서 밀린다. 아이가 열이 나서 조퇴를 하면 상사가 그럼 그렇지..라는 미묘한 표정을 보낸다. 일과 육아, 두 가지를 같이 병행하려니 너무 버겁다. 아침에 회사 갈 때마다 '엄마, 가지 마.'라며 아이는 엉엉 울고, 회사에서는 점점 승진과 중요 업무에서 밀려나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살고 있나?


이렇게만 봐도...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업이 후회만 남기는 일이 된다.

왜냐... 세상은 결혼과 출산 전후로 여성에게 기대하는 잣대가 너무 달라진다. 한마디로 이율배반적이다. 출산 전까지 중요한 사회인력으로서 살아오다가 출산을 하면 갑자기 애엄마로 평가절하한다. 엄마와 나라는 정체성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다. 엄마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그동안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희미해진다. 나라는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 고전적인 '엄마 다움'이 없다며 또 욕을 얻어먹는다. 여성은 결혼과 출산 이후로 정체성을 잡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균형 잡기가 이렇게 어려운 게 없다. 그러니 결혼이 후회될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지 말고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일, 원하던 꿈을 훨훨 펼칠 걸... 그런 후회를 하는 것이다.


출산율이 1명도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 오늘 신문기사에서 남성은 여력이 되면 결혼을 하고 싶다는 비율이 70% 이지만, 여성은 여력이 되면 비혼으로 살고 싶다는 비율이 70%로 나온 결과를 보았다. 여성들은 선배들을 보고 이제 아는 것이다. 결혼하면 저런 고통과 갈등과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걸. 문장완성검사에서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한 엄마들과 같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결혼보다는 비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 전후로 여성에게 기대하는 잣대가 극과 극으로 달라지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구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문제는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걸 본격적인 담론으로 띄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정말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면 '기존 사회, 경제, 규율, 남성' 집단이 큰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출산 후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해주려면, 육아라는 큰 문제를 남성과 사회와 기업이 같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육아와 살림을 경제적 차원에서 산술적으로 계산을 하게 되면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감당이 안 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경제적인 차원으로 계산되는 자본주의의 간사함과 얄팍함이 이렇게 사람의 본성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


육아와 살림을 여성이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것이 한 아이를 위해서 더 좋을 수도 있다. 적어도 세상에서 출산과 육아의 숭고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고귀하게 인식하기만 해도... 여성의 정체성 갈등과 출산율 문제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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