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떠나보내고
누구보다 미래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던 친구에게 더 이상 그릴 미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내 친구가 하늘로 떠났다.
10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거치고 고된 그 길을 걸으며 눈을 감았다.
만 30살의 나이의 혈기왕성함은 되려 암세포에게 힘을 가져다주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확산되어가며
온몸에 침투하여 신체 내 모든 기관을 잠식해갔다.
한주 한주 지날 때마다 급격히 바뀌어가던 내 친구의 모습에 늘 당황해하고 눈물을 쏟던 과거의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할 거라고 함부로 예단하였는데,
이게 얼마나 괴상망측하고 철없었던 생각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현실에 어떻게든 발 붙어사는 것이 더 나음을 친구가 떠나고 12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깨달았다.
1. 그 친구의 고향 집은 매우 시골이어서 하루에 버스가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 번밖에 다니질 않는다.
이 말인즉슨 점심 약속이 있어서 설령 나가기라도 하면 억지로라도 저녁까지 버텨야 하고,
저녁 약속이라도 생기는 날엔 택시를 반드시 타고 귀가해야 해서 그날 택시비는 반드시 남겨두고 놀아야 했었다. 택시비마저 탕진하게 되는 날엔 친구 집에서 자거나, 근처 초등학교나 중학교 운동장 구석에 앉아서 모기에 뜯겨가며 술을 마셔야 했었다. 하루 세 번 중 아침 차를 타기 위해서 말이다. 그땐 그게 너무 가혹했다. 난 집이 바로 옆이었는데, 친구를 데려와서 자기엔 집이 비좁아 차마 데려오지 못하여 어딘가 불합리하게 연대책임을 지게 되어 억지로 붙잡혀서 밤새 기다려야 했었다. 모기에 더 뜯겨도 좋고 꾸벅꾸벅 같이 졸아 줄 수 있으니, 친구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2. 그 친구의 집 근처엔 사람들의 왕래가 극히 드문 저수지가 하나 있었는데,
너무나도 철이 없고 겁도 없던 어렸을 적, 저수지에 보트 하나 던져놓고 구명조끼 없이 오밤중에 멀리 켜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등대 삼아 놀다 오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근처 낚시 용품점에서 산 싸구려 실 낚싯줄을 돌돌감아 던져서 쏘가리도 잡고 심지어 거북이도 잡곤 했었다.
저수지의 깊이는 그 당시엔 너무나 깊어 보여 가늠조차 안됬었는데, 지금 나의 슬픔의 깊이가 딱 그 저수지의 깊이만큼인 듯싶다.
3. 둘 다 전주, 청주로 서로 다른 국립대에 가서 대학생활을 하였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일주일씩 지내며 놀다 오곤 했었다. 그 친구의 시험기간이 놀러 가는 날과 겹칠 때면 집에서 3일 내내 편의점과 배달음식으로 간신히 하루 한 끼를 때웠지만 그때의 굶주림과 배고픔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친구들 여럿이 모이는 날엔 병소주로 사기엔 주머니의 궁핍함이 장애물이 되어, 담금주로 쓰이던 큰 플라스틱 소주를 사서 맛이 더럽게 없다는 불평과 함께 마시며 쓰리고 주린 속을 부여잡고 다음날 일어나곤 했었다. 그때의 속쓰림도 지금 친구를 떠나보낸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4. 친구의 투병생활 기간에 꽤 자주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한 날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써서 보냈다. 그 당시엔 내 소신을 다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다시 살아 돌아와서 내 이야기를 마저 들어줬으면 좋겠다.
5. 운구를 할 때 직육면체 네모난 상자에 갇혀 있는 친구의 몸은 차갑고 나무의 무게까지 더해져서 상당히 무거웠지만, 둥그런 자기병에 담겨 나온 친구는 뜨겁고 가벼워졌다. 남기고 가는 유형의 것이 고작 이거뿐인 현실이 너무나 처량했다. 묻히기 직전까지 그 온기는 가시질 않아, 세상에 아직 남은 친구의 미련과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다.
혼자 산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와서 미안해 기연아 이 뙤약볕엔 적절한 그늘이 필요할 테니, 이 삼복더위가 다 가시고 예초기 들고 친구들과 함께 소주 사서 갈게. 아 참, 그리고 너의 49제가 있는 날인 9월 1일 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바다와 삼겹살을 경험하러 친구들과 해운대에 가기로 했어. 그곳에서도 우린 참 많은 추억이 있었지. 닭싸움도 하고 족구하고 수영하고 밤새 먹고 놀고 취하고 같이 뒤엉켜자곤했던 추억 많은 해운대에 같이 가자. 너 사진 들고 가려고 그때 다녀와서 다시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