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운 것에 대하여..
Prologue & Ending
내용을 기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영화는 모든 게 의문이다.
이 대본을 쓴 작가와 연출해낸 감독, 그리고 투자한 투자사, 배급사 모두가 의문이지만 모두가 대단하다.
기존 영화 기술에선 스토리 요약이 담겨있지만 이 영화에선 그다지 의미가 없다.
기존의 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스토리 전개와 참신함 그리고 제이크 질렌할이 아니면 누가 이 역할을 소화해 낼까 할 정도의 미친 연기 등등 이 모든 게 영화를 일주일에 2~3편씩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10년 동안 본 나에게도 새롭다.
간략한 스토리
네이버나 다음 영화에 나오는 간략한 줄거리 요약으론 이 영화의 똘끼를 담을 수 없기에 간략히 서술하겠다.
우선 이 영화의 핵심은 남 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결혼마저 쉽게 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없던 데이비스에게 처음으로 아내의 죽음이라는 시련이 닥친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이 또한 시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병원에서조차 M&M 자판기의 오작동이 그에겐 더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그 후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슬픔 기색이 전혀 없다. 그에겐 아내의 죽음보다 자판기 오작동으로 자신의 125 cent를 먹은 게 더 큰 의미인 듯하다. 오죽하면 그는 Complain letter, 즉 항의편지를 자그마치 편지 넉장 가량, 그것도 만년필로 작성해서 보내고 이를 읽은 CS 부서의 캐런과 친분이 생기게 된다.
그 후 그는 처음으로 나 다운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고, 쉽게 이룩해낸 모든 것을 바꾸고 파괴하게 되며(정말 물리적으로 파괴함, 이베이에서 포클레인 사서 집도 때려 부숨)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내용이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토록 중요한 내용이다. 나 다운 것이 무엇일까? 내가 정말 행복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지 못하고 미래를 당장 걱정해야 되는 요즘 세대에겐 여러 가지 울림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질문을 자주 하면 별종으로 취급하는 사회 풍토 덕에 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미 특이종을 취급하듯 사람들이 환경을 조성한다.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기는 반드시 온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답을 내릴 순 없으나, 그 시기가 언제든 반드시 답을 내려야 하며 부모 형제를 포함한 가족, 친한 친구, 애인, 부인, 자식 등 그 모든 관계를 제외하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 패스 후 판사로 임용되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그렸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법을 공부하다 문득 그는 자신에게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모든 법이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그 전제조건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것인데 모두가 다 수긍하고 인정한 이 명제에 그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가?
이 질문 자체가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에겐 이 질문이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 판사를 그만두고 철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한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현재 재직 중이다.
스스로를 탐구하는 시기는 꼭 필요하며, 이 영화 속 데이비스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발가벗기려 노력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방법이든 아니든 그에게 혹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에 대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