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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쓰 Jul 29. 2024

한 장 소설

경계선의 시작



글을 쓰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결심은 오래전에 했습니다. 

그런데 적어야 할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둥둥 떠다닙니다. 

그래도 소설가가 되려면 써야 한다고 하니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죄책감이 조금 옅어집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어요.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죠. 그러니 이렇게라도 써보려는 겁니다. 


와중에 나는 '필립 로스'라는 작가를 최고로 칩니다. 그런 내게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깔때기 끝으로 모이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경계인' 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 로스는 '정상' 범주에서 밀려나 경계에 선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대변해 줍니다. 

로스의 경계인들은 상실로부터 기인한 온갖 상념,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에 투쟁의지를 불태워요. 


가령, 제 기능을 못하는 성기라던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식의 일탈, 바람으로 자신을 기만하는 아내, 가족의 죽음 등등. 그러니까 개인에게 들이닥친 질병이나 죽음 등 고통에서 비롯된 상실감. 흔히 말하는 우리 삶의 단짝인데요, 그 실존적 친구들을 통렬하게 묘사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고통스런 삶이 우리 거라고, 아니 인간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런 로스의 이야기에 가슴 깊이 공감해서인지 내 이야기로 그의 주장을 좀 더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내 아빠의 이야기를 하면 될까요?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아빠의 이야기가 입에 맴도는 그때부터 시작됐어요. 

아빠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 그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숱한 경계가 있다는 걸요. 

도처에 경계가 있는데 넘을지 말지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라는 것.

어디든 경계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같은 것 말이죠.


아빠의 죽음 이후로 내가 한 선택들은 무언가 휙휙 꺾이는 느낌이었어요. 

곡선이나 직선이 아닌. 그렇게 이 세계 저 세계들이 뒤섞인 채로 통통 부딪치며 존재하는 가운데 나는 그 세계들 간의 떨어진 사이. 그 어디선가 부유하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그 사이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어요. 

세계이지만 비정형인. 


네, 어디에도 자연스럽게 속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깨달은 겁니다. 분명 어딘가 속해 있긴 한데요, 조금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너무 쉽게 새어 나오는 거예요. 틈만 있으면 어디든 새나갈 수 있는 존재. 동일한 작은 알갱이들이 이질적인 모양의 나를 밀어내는 걸까요, 아니면 나는 자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는 걸까요. 


나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요. 




초등학교 때 경기도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4학년 어느 한 반에 배정되어 들어갔죠. 내 짝은 남자아이, 이름은 ‘김현철’로 기억합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개구리처럼 눈이 툭 불거져 있었어요. 그 아이는 제 등장에 놀랐다가 이내 놀릴 거리를 찾았다는 마음에 살짝 긴장이 풀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현철과 짝을 하라는 선생님의 이야기와 저 자리, 손가락으로 가리킨 저 자리에 가 앉았죠. 그 아인 내게 질문했어요. 


  “야, 너 서울이 특별시게 아니면 광역시게?”

  “서울특별시? 서울 광역시?”

  “그래. 둘 중에 뭐야?”

  “서울 광역시 아냐?”

  “야, 얘가 서울 광역시래.”


책상을 손바닥으로 팡팡 내리치며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조금 머쓱했어요. 

아, 서울특별시구나. 그때 확실히 알았죠. 경기도는 경기도인데 서울은 서울특별시고. 


그때부터 뭐랄까, 조금 달랐어요. 

체육대회가 있어 50미터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글쎄 내가 일등을 한 거예요. 나는 경기도에 살 당시, 일등을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나는 늘 열 명 중에 4등이나 5등을 하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서울에 오니 가볍게 일등을 하는 거 있죠. 놀랐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서울 애들은 경기도 애들보다 약골이구나.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내게는 지금이 유리한 상황이니 좋은 거였죠. 어쨌든 나는 체육 과목에선 좀 두각을 나타냈어요. 체육대회에서 매번 좋은 결과를 내니 체육 선생은 나를 지지하고 나섰어요. 학교 육상부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습니다. 기분 좋았어요. 뭔가 다른 특권의 그룹 같았거든요. 그 팀에선 자신들만 입는 유니폼도 갖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유니폼을 나도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실제로 그 유니폼을 입고 팀의 아이들과 학교 계단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죠. 특별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어설픈 체육 실력을 바탕으로 해서요. 


나는 높이뛰기 선수였어요. 해마다 돌아오는 운동회, 그러나 아무도 넘지 못하던 봉을 훌쩍 점프해 허리를 꺾어가며 뛰어넘었거든요. 서울 아이들은 약체라 그것도 넘지 못하던 것. 사실은 그게 다일뿐인데. 어쨌든 나는 높이 뛰기 선수가 되어 수도권 학생 선수권 대회 같은 곳에 높이 뛰기 선수로 출전했는데. 될 리가 있나요. 경기도에서 이미 반 정도 실력 밖에 안 되던 내가, 돌고 돌아 날고 기는 친구들 속으로 되돌아갔는데 잘 될 리가 있나요. 


나는 서울에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서울특별시를 헷갈려하고 경기도와 서울 아이들의 체력 차이를 깨닫고 있었고, 또 같은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친구에게 나도 생일 파티에 껴 달라며, 왜 나는 초대 안 해주냐며 울던 내 모습을 가진 채로 말입니다. 


공부도 그냥 그랬죠. 중학교 시절 함께 어울려 놀던 여자 친구 셋이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워낙 잘하니 외고로 진학했고 나머지 두 친구는 같은 여고에 배정 받았어요. 나 혼자 외따로 다닐 생각을 하니 서러워 한 친구를 붙잡고 울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우정이 깊었던 친구, 내가 사랑했던 친구와 함께 있지 못하는 마음이 서러웠던 것 같아요. 

아무튼 나는 또 다른 길이었어요. 


시간은 제법 흘렀고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어요. 더 좋은 곳에서 조금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했거든요. 그렇게 내 인생에 서울대가 시작된 겁니다. 꿈의 대학, 서울대. 그런데 끊임없이 사람들이 갈라지더군요. 서울대와 비서울대 출신. 더 들어가니 과별로 벌어지는 틈. 또 더 들어가니 고등학교까지 벌어지는 틈.


나는 얼마나 조무래기였겠어요. 자교 출신도 아닌 데다가 고등학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렇고 그런 고등학교. 나는 너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그들의 스타일을 흉내내기도 했어요. 연구실에 자리를 잡으려고 어찌나 노력했던지. 내가 그 틈에 끼일 염려가 없었더라면 연구실의 한 자리를 과연 탐냈을까요? 

순진하게도 나는 그곳에 속한 사람이고 싶었거든요.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그 다음날, 논문자격시험이 있었어요. 지도 교수에게 시험 일자의 양해를 구하니 '선례'가 없다며 거절당했어요. '선례'라는 무지막지한 말. 그리고 나는 등신같이 시험을 보러 나갔습니다. 

뒤죽박죽 무엇이 헝클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헝클어진 머리를 부여잡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나는 언니를 만나러 미국으로 떠나 왔고 학교를 관두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서울대는 영영 이별인 셈이었죠. 사람들이 부여한 달콤한 무언가가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내 것은 아니었던 곳. 내게 허락된 게 없으니 달콤하지 않아요. 오히려 퉤퉤 뱉어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무언갈 써보겠다는 욕망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또. 또. 

영영 겉돌아야 하는 운명이죠.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쌓이며 머리가 조금 굵어지니 아빠의 죽음은 나의 이런 겉도는 삶을 하나로 꿰어 주더군요. 

어딘가 속하지 않으면 그 '경계인'으로서의 외로움이 평생 쫓아다닐 거라는 사실을요. 


네, 나는 '경계인'입니다. 

경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본 적도, 경계 바깥 그 멀리도 나아가 본 적이 없는 경계인입니다. 

안과 바깥 어설프게 알면서 그 어설픈 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나같은 사람이 제법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과감히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거나 과감히 뛰어들 것을 강권하진 않아요. (그런데 안은 어디고 바깥은 어디인가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요. 그저 자신이 왜 그런 존재인지만 알게 하는 게 내 목표예요. 굳이 그걸 알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긴 합니다. 


글쎄요,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 외로움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아, 내가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덜 외로운가요?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나의 고백을 마치고 진짜 인물과 사건이 엮인 한 장의 소설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내 허심탄회한 고백이 내가 만들어 낼 이야기의 근간이 되어 줍니다. 



'경계인, 이방인들의 삶의 시작'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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