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안나 신 May 23. 2019

5번째 이직을 앞두고

평균 근속기간 9개월 직장인이 전하는 복잡 미묘한 설렘

내일이면 5번째 퇴사를 한다. 맡았던 일을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끝내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막상 퇴사일이 다가오니 해방감이나 카타르시스보다는 떠나는 곳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 갈 곳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분명 이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는데, 언제 이렇게 떠나는 게 아쉬울 만큼 익숙하고 편안해진 걸까.


퇴사는 생각보다 쉽고, 또 어렵다

나의 첫 퇴사는 참으로 서툴렀다. 차마 면대면으로는 말을 꺼낼 용기가 없어 한 밤중에 이메일로 사직 의사를 밝혔는데, 당시엔 고용 계약서에 적힌 대로 서면 통보를 했다는 나름의 합리화를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건 뭐, 잘 만나다가 갑자기 문자로 헤어지자고 하는 개객끼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상사는 내게 면담을 요청했고, 그는 화를 내는 대신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떤 이유로든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사직서를 낼 때까지 숨기기보다는 전조 증상을 보여줘. 상황을 개선시킬 기회를 주고 받아들일 시간을 주는 것, 그게 함께 일한 사람에 대한 예의야."

그렇지만 내가 떠나는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만큼, 조정하고 협상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퇴사와 이직이란, 가족의 안위와 나의 건강, 삶의 질, 일의 내적 동기 부여, 함께 일하는 동료들, 회사의 비전과 도덕성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는 일이고, 이는 승진이나 연봉 인상과 같은 획일적인 방법으로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다.


이해받지 못할 용기

직장을 옮긴다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약이지만, 사실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행위 자체가 한편으로는 그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만 같아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나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상당수의 헤드헌터와 채용 담당자들이 근속기간이 짧고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끈기가 없고 적응을 못하는 것이라 외치고, 또 이 기준을 실제 채용에 적용시키는 사회에서 자라왔고 아직까지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수많은 면접과 5번의 이직을 통해 느낀 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직 횟수와 근속 기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함께 일한 그들은 이직 횟수보다 이직 사유를, 근속 기간보다 내가 근무 기간 동안 한 일과 성과에 더 관심을 보였고, 이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내가 그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일할 것인지 보다 하루를 일해도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히 여기는 듯했다.


내가 1년도 채 일하지 않은 현 직장의 상사에게 사직 의사를 밝혔을 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극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곤 이 직장에 평생을 바칠 사람은 없어, 나 또한 그렇고. 네가 이 곳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네가 원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니 정말 기쁘고 뿌듯하다. 우리 팀은 다 널 그리워하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또 함께 일할 기회가 있길 바라!"

물론 모두에게 이렇게 응원받고 이해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비단 이직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아니한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채용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할 때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과연 나는 그렇게 선입견과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보면 낙방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나는 이직이 잦은 편이지만, 이직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일장일단이라는 말처럼, 여러 곳에서 짧게 짧게 일하기에 놓치는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근속과 이직 횟수가 결정의 기준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나라에서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기회가 왔을 때, 이 기회를 단순히 이 직장에서 아직 1년을 채우지 못했고 벌써 이직을 벌써 4번이나 했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 아닐까?


그래서 난, 그 기회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내일 퇴사를 하고 그다음 날 싱가포르로 떠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