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난 혼자 버는 여자 친구가 됐다 02
여자 혼자 번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흔히들 '일하는 여자'와 '집안일하는 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선 요즘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남자 전업 주부도 많다며 TV나 주변에서 본 살림하는 남자 이야기를 하나둘씩 늘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회사 안 다닌다고 했지, 전업 주부라고는 안 했는데요?”
난 고등학교 때부터 그와 동거를 시작하기 전까지 10년간 자취를 했다. 모든 자취생에게 그렇듯 내게 집안일은 학교를 가던 회사를 가던 (혹은 그렇지 않던)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한 그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각자 혼자 살아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둘이 같이 산다고 해서, 그리고 그 둘 중 한 사람만 경제 활동을 한다고 해서 굳이 칼같이 나눠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우린 역할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가사 '분담'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누가 뭘 해야 한다고 특별히 규정짓지 않았더니 각자의 눈에 보이는 할 일을 그때그때 직접 하게 됐다. 당장 시간이 없거나 미숙해서 직접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부탁을 했고, 도움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표현했다.
우리는 규칙과 분담의 부재 속에서 지난 5년간 단 한 번의 가사 갈등도 겪지 않았다. 해법을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남자'가 잘 도와준다거나 '바깥일 하는 사람'이 잘 도와준다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관계를 뒷받침해준 것은 둘 중 한 명만의 양보가 아니었다. 우린 서로 도왔고,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혹여 나중에 그가 외벌이를 하거나 우리가 맞벌이를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사부작 대길 좋아하는 나는 보통 아침을 차려놓고 출근을 한다. 나보다 늦게 자는 그는 느지막이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집안을 환기시킨다. 먼저 일어 나는 사람이 밥을 하고 늦게 일어 나는 사람이 청소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내 아침을 만들고 내 침구를 정리하는 김에 상대의 몫까지 챙기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와 함께하는 삶이 이분법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일상의 중심이 회사일과 집안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여가를 즐기며 경제적 자유가 있는 미래를 그리기에도 우리의 하루는 너무 짧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