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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홍 Oct 27. 2019

달팽이 따위에 정을 주다니요

 

 기르던 달팽이가 죽었다. 평균 수명이 1년 내지 2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물이 나와 장장 5개월에 달하는 시간을 함께 했으니 과장을 좀 보태자면 나는 달팽이의 반평생을 함께했던 셈이었다.

  현충일이었다. 첫 자취를 시작한 내가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을지 걱정하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시골에서 직접 기르신 상추와 고추를 비롯한 이름 모를 쌈채소들을 박스가 터지도록 보냈던 것이. 감사함과 피로함을 함께 느끼며 퇴근 후 내내 채소를 다듬다 등껍질이 반쯤은 깨진 달팽이가 상추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난 어쩔 수 없이 기르기로 했다. 그대로 방생했다간 반나절도 못돼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으므로.

당황스러웠던 첫 만남

 하지만 처음부터 이토록 오랜 시간 함께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등껍질이 깨져있었으므로 방생하면 금방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고 녀석의 등껍질이 깨진 원인이 상추밭주인 내외의 손녀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미안해져서 며칠간은 우리 집에서 요양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은 등껍질이 아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달팽이 껍질에 좋은 음식’을 검색하더니 달팽이가 살기 좋은 흙을 사고, 사육장을 바꾸고 오로지 달팽이만을 위해 채소를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만하면 됐지, 방생을 마음먹었다 가도 어느 날은 날씨가 너무 맑아 타 죽을까 걱정이 되었으며, 어느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간신히 아문 패각(등껍질)이 다시 깨져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놓아주지 못했다. 또 적당히 습도가 높은 날은 지렁이나 다른 곤충들이 튀어나와 해를 끼치진 않을까 싶었고, 마침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자체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좀 좁긴 해도 우리 집이 안전할 테니 그냥 우리 집에서 사는 게 좋겠다, 소나기가 내리던 날 양배추를 먹던 달팽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렇게 달팽이는 내 첫 번째 반려동물이 됐다. 


 너도 참 대단하다, 얘.


 달팽이와 함께 산 지 2주 정도 됐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고양이도 아니고 강아지도 아닌 시골 쌈채소에서 딸려 나온 달팽이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긴 하지. 생각하면서도 왜 아직도 집에 두고 있냐는 말들이 퍽이나 섭섭하게 느껴졌다. 보기보다 까다롭고 예민해서 먹이가 마음에 안들거나 사육장(그래 봤자 집에 남아도는 스테인리스 접시)이 청결하지 않으면 껍질 속으로 숨어 버리기 일쑤였지만 털이 날리는 것도 아니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었으며 사료라고 해봐야 어차피 두면 시들어버릴 냉장고 속 채소들이 전부였을 뿐이었는데. 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길 들을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알지도 못하는 달팽이보다 더 억울한 심정이 되어 달팽이가 생각보다 얼마나 개성이 넘치는 생물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기해서 영상으로 찍어뒀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르는 반려동물들도 저마다의 입맛이 있듯이, 달팽이에게도 입맛이라는 게 존재해서 어떤 달팽이는 애호박을 가장 잘 먹지만 어떤 달팽이는 당근을 가장 선호하기도 한다. 상추에서 나온 녀석 답게 푸른 쌈채소를 가장 좋아했던 우리 집 달팽이는 시골에서 왔음을 증명하듯 마트표 상추는 잘 먹질 않았다(…) 물론 주면 먹기야 했지만 매일 밤 갉아먹은 흔적과 활동량으로 봤을 때 생존을 위한 섭취가 분명했다. 이 사실은 마트표 상추를 먹이다 간만에 시골에서 온 상추를 줬을 때 알게 되었는데, 8평 남짓한 자취방 안에 달팽이가 상추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중이었으므로 주변 소음과 차단된 상태이긴 했으나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검지 손가락 두 마디밖에 되지 않는 달팽이가 내는 상추 씹는 소리라니. 다음 날 아침 밭에서 온 상추가 너덜 해진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이 녀석 입맛이 까다롭구나…’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 주관은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만큼, 반려 동물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 주인과 반려동물의 습성이 닮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달팽이와 나는 참 잘 맞았다. (달팽이가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편식이 심하고, 몸집에 비해 많이 먹고, 안 그렇게 생겨서 생각보다 예민하다는 점, 사는 게 고단해지면 집 속에 들어가 숨는다는 점이 꼭 그랬다. 어쩌다 일상이 고단해지면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에 나 말고도 사는 게 고단한 생물이 하나 더 있다는 게 안쓰럽지만 위안이 됐다.

(텔레비전 우측 아래) 야식을 먹을 때도

 돌이켜 보건대, 좋은 주인은 아니었다. 혹자는 내가 우연치 않게 딸려온 달팽이를 정성스레 돌본다며 기특하게 여겼지만 외로운 생활에 불쑥 찾아온 달팽이를 내가 놓아주지 않은 것일 뿐. 며칠씩 집을 비우거나 습도 관리에 소홀해 주기적으로 겨울잠을 자도록 만들었고 어느 날엔 마실 나온 달팽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청소기를 돌리다 겨우 붙은 등껍질을 깨버리기도 했다. (이 날 참 많이도 울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산란기에 방생은커녕 제 짝도 찾아주지 않았던 일일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달팽이를 감당하지 못할까 싶어 제 주인 마냥 외로이 둔 것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어떤 이별이 그렇듯이, 달팽이와의 이별도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계절이 바뀌니 겨울잠에 드는 일이 잦아지고 먹이도 시원 찮게 먹던 녀석이 흙을 갈아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겨울잠을 청한 것이었다. 큰일로 치부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전과는 다르게 달팽이 옆으로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띄어 달팽이를 꺼내 보니 속이 비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물에 담가도 보고 자세히 살펴봤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달팽이가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손가락의 한 마디밖에 되지 않는 달팽이의 집을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살았을까 싶어 물에 적신 채로, 집 근처 공원 가는 길에 있는 세 그루의 나무 중 가장 큰 나무 밑에 놓아두었다. 다음번에 내가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때, 달팽이의 빈집을 보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이렇게 금방 갈 줄 알았으면, 달팽이 따위에 정들 줄 알았으면 진작에 내보낼 걸.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었다. 

할아버지 밭. 아마도 달팽이가 왔을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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