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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홍 Jan 25. 2023

그토록 바라던 바다

이루지 못한 애틋한 꿈에 대하여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여섯 살 무렵, 아빠의 서재 뒤편을 가득 채운 책장 가장 아래 한 켠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태어날 적부터 몸이 약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던 나에게 책은 가장 좋은 친구이자 내가 마주한 첫 번째 세계였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차디찬 서재 바닥과 손을 스치는 종이의 촉감, 문틈으로 풍겨오던 따뜻한 집밥 냄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지만 말하길 좋아했던 나는 한글을 떼지 못했을 때에도 엄마의 품 안에서 책을 거꾸로 들고 이야길 지어내 읽었고 아빠 무릎에 앉아서는 삐뚤빼뚤하게 쓴 일기를 보며 수다를 떨었다. 아마 이런 환경과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맞물려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듯싶다.

 하지만 나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된 건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후였다. 그 기간 동안 화목한 가정의 표상이었던 집은 사랑과 전쟁의 실사판이 되어 있었고 그리하여 나는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게 모든 지루한 드라마가 그렇듯이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와서 경험해보지 않은 가난까지 겪게 되었으니 매일매일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이가 열여덟. 집이 그 지경이었으니 차라리 학교가 나의 안식처였다. 그 안식처에서 마저 불행할 수는 없어서 쥐어짜듯 웃으면서 다녔다. 너무 울어서 눈가에 실핏줄이 터진 상태로 등교해 친구들과 인사하고 있자면 내가 꼭 지킬 앤 하이드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교내 백일장이 열렸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글쓰기를 싫어했고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 학교는 백일장 참여 시 오후 수업은 빼주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여기에 수업을 듣기 싫은 몇몇 학생이 걸려들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나였다. 글쓰기를 좋아했어도 흔한 독후감 대회에도 나간 적이 없던 터라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는 시간을 어떻게 때우고 들어갈지 고민이었다. 빨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출입문 앞에 어색하게 앉아있다 시험지를 펼쳐 보고는 잠시 멍해졌다. 인생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쓰라는 지시문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나에겐 버거운 일인데 극복이라니. 묘한 반항심이 일었다. 출제자의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밤마다 반복되던 불면과 악몽을 묘사해 놓고는 무기력한 내 모습을 언젠가 본 어항 속 물고기에 빗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썼다. 묵혀둔 감정은 해소됐지만 주제에도 맞지 않았을뿐더러 자기 연민으로 점철된 배설에 불과한 글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학생을 외면할 수 없었던 선생님들에 의해 인생에서 몇 번 받아 보지도 못한 상장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도 선생님들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픔에 대한 자기 고백이 성취로 연결되는 경험은 꽤 큰 충격이었다. 손에 쥐어진 상장과 문화상품권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아픔도 어떤 쓸모가 있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글은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 향기를 맡기 위하여
- 곽재구 <새벽편지>


 무언가를 위해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유일한 기둥이었던 엄마와 생이별을 하고 생때같은 동생마저 떨어진 채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혹여나 자식이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걱정스러웠던 엄마가 책을 보내왔다. 삶을 실패한 여자가 1년 뒤 자살을 결심하고 꿈꾸던 여행지에서 죽기 위해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스스로에게 내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 1년 후 여자는 죽지 않았다. 살기로 결심한 여자는 글을 썼고 그녀의 이야기는 바다를 건너 한국의 작은 도시에 사는 나에게 전달되었다. 당신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절절하게 와닿았다. 남은 거라곤 독기 밖에 없던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일 지금을 기어이 극복해 내서 미래에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하여 취미였던 글쓰기는 꿈이 되었고 불행 중 다행인지 당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큰 고민 없이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박완서나 노희경처럼 개인의 아픔을 글로 승화시킨 작가들을 보며 꼭 그들처럼 되리라 대찬 포부를 품으면서도 시험 지문으로 나온 시 한 줄에도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다 마침내 합격증을 받아 들고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가족에게 돌아가던 날, 나는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나에게는 영원히 결론 없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 박완서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자신의 뜻대로만 되는 인생은 없다고 하지만 결국 현재의 삶 또한 내가 고를 수 있었던 여러 선택지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게 대단한 포부를 품고 원하는 곳에 진학했던 나는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너무나 쉽게 그 길을 포기해 버렸다. 합리화는 쉬웠다. ‘글쓰기는 다른 일로 먹고살면서 해도 돼’, ‘난 내 삶도 중요해’. 세상 밖에 나와보니 재능이라고 여긴 재주는 한없이 얕은 것인데 불안정한 미래에 내 젊음을 온전히 바칠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투잡, 쓰리잡으로 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오는 보통의 삶, 그런 것들이 쓰는 이들에게는 욕심이구나.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도리어 나는 그 보통의 삶에 대해 갈망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사회적인 시선이나 생활고도 묵묵하게 견뎌낼 수 있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단언컨대 이제 나는 또 다른 어항 속에 갇혔다. 많지는 않지만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급여와 적당한 여가시간이 보장되는 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로 냉장고를 채우고 집에 식물이나 엘피 몇 장을 구비해 놓고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위한다. 미지근한 물속에서 부유하며 세상의 모진 풍파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다행이 아닐까, 이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만든 아늑한 어항 속에서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더 이상 바다에서 살아갈 수 없는 열대어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지금 나에게 글쓰기란 스스로에 대한 직무유기 혹은 답보상태다.

 하지만 이곳 또한 내가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다. “결혼해 보면 알겠지만”, “너도 이제…” 당연하게 우리가 삶의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말들. 동료들이나 가족들은 내 삶의 형태가 어떤 쪽으로 완전히 굳어지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선과 말들은 도리어 내가 이곳에서 이방인임을 깨닫게 한다.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온전히 같아질 수는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나는 좀 두려워진다. 다시 한번 그 어려운 걸음을 내딛게 될까 나는, 실패한다 해도 쓰는 삶 그 자체로도 괜찮을까. 아니면 철없는 10대 시절에 꾼 치기 어린 꿈으로, 못 다 이룬 미련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걸까. 다시 내 앞에 놓여진 선택지를 두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래서 어항 속 물고기는 어떻게 될까. 나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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