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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May 03. 2024

반포에서 가짜 부자로 살기 [1]

마포를 도망치듯 떠나오다

재작년 귀국 당시 우리 부부 둘의 소득이 적지 않은 편이었음에도 국내 소득증빙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우리 둘은 백수나 다름 없는 취급?을 당했다


신혼부부 전세보증금 대출은 커녕 흔한 신용대출도 불가능했던 터라 우린 별 수 없이 용강동에서 보증금이 제일 낮은 아파트 월세집을 구했다.


마포, 그 중 공덕 인근을 선택한 이유를 대자면.

1. 직장이 을지로인 아내의 출퇴근 거리

2.입학이 가능한 유치원이 마포역 근처 딱 하나 였으며

3. 평판이 좋은 염리초 배정


방 두 칸이 300만원인 영국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던 우리었다. 20평대 전세 시세가 7-8억이고 4%가 전월세 전환율이라 전세대출의 이자나 월세나 나갈 돈은 비슷했다.


어르신 한분이 쭉 사셨다는 집은 깨끗했고 성품 좋으신 집주인분을 만난 덕에 아무런 트러블도 없었다.

보증금을 착실히 모아 베란다에서 보는 한강 불꽃축제가 끝내준다는 단지 내 30평 대로 옮길 그 날을 꿈꾸며 그렇게 18개월을 만족하며 살았다.


그 놈의 지역축제가 있기 전까진 말이다.


하...

...


전날 기어코 폭 5미터 남짓의 보도블록 위에 플라스틱 콘서트 의자가 깔리더니, 다음날 아침부터 초대가수의 우렁찬 인사소리를 시작으로 내내 트로트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건물에 부딫혀 증폭된 마이크 음성은 좁은 도로를 마주 본 아파트 단지 사이 사이를 왕왕왕 울려댔다.

유치원 버스 지나다니는 도로가 옆에서 부녀회 소속으로 보이는 인원들은 분주하게 전을 부쳐냈고 아침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그들만이 즐거운 축제 그 놈의 마용성 마용성 입지 덕에 주머니가 두둑해졌으나 돈 쓸 줄 모르는 졸부

‘사장님 송파에서도 이런 축제 해요?’

‘어휴 그 동네는 길에서 마이크만 켜고 다녀도 난리나요’

잠실에 사시는 문방구 사장님께 묻고는 씁쓸해서 웃었다.


이틀간 벌어진 이 축제를 보며 지자체가 내 세금을 매우 허투로 쓰고 있다 느꼈다. 아니 적어도 트로트가 아이들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보다 우선시 됨에는 분명해 보였다.

(지자체 의지가 있었다면 염리초등학교 옆에서 수십년째 영업하는 불법 포장마차는 진즉 자취를 감췄을거다)

도저히 분이 안풀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구청에 민원을 넣은 그 날 밤 나는 마포를 떠나야 겠다고 와이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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