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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May 03. 2024

반포에서 가짜 부자로 살기 [2]

평당 1억

‘조용하고 교통 편하고 좋다며? 뭔 또 이사타령이래’

‘자 앉아봐.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신청자가 몰려서 방과 후 돌봄 교실을 못하게 됐다고 생각해 봐 점심 먹고 돌아올 니 아들을 누가 데려올 것이며 데려오면 집에만 있어? 1시부터 학원이라도 보내서 시간 때우려면 학원 4-5개는 다녀야 돼. 그럼 100만 원도 넘겠지. 100만 원이 뭐야 150만 원은 들겠다. 학원 뺑뺑이 돌리기 싫다며 지금 내는 월세에 학원비를 더하면 서울 못 살 동네가 없데도?’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나를 멈춰 세우곤 ‘그래 뭐 네 말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녀봐 돈 들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이렇게 동요하고 파바박 튀는 건 그놈의 트로트 때문이다. 주민들의 의사는 아랑곳 않는 주민센터. 며칠 전 남긴 민원에는 ‘축제 진행 전 주변 상인회와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 양해를 구했다.’며 문제 될 것 없다는 투의 답변이 달렸다. 여보세요 선생님, 그게 아니잖아요. 그게 통보지 양해예요?


그날 이후 나는 네이버 부동산과 호갱노노를 파기 시작했다. 서초 강남 송파에서 아이 키우기 좋다는 동네를 선별했고 초등학교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출퇴근은 얼마나 걸릴지 매물 회전이 많은 대단지 아파트 주거 지역은 어디인지 알아봤다.

몇 군데 지역을 추리고 나서는 초등학교 행정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돌봄 교실이 잘 운영되는지 혹시 지원자가 초과되면 추첨을 하는 건지 알아보고 정리했다.


많이들 상급지 이사를 고려할 때 학원가 접근성을 중요시한다 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할 생각이라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잠실은 녹지도 많고 좋은데... 지하철 말고는 출퇴근이 어렵겠고... 도곡 대치는 너무 안쪽이라 한강변까지 빠져나오는데 너무 오래 걸리겠구나 그 동네 학업 분위기 감당도 안되고...

이런저런 항목들에 점수를 매기고 초등학교 행정실에 확인한 정보들을 하나씩 취합해 보니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지역이 ‘반포’였다.


‘우리 반포 가야 돼.’

‘반포가 어디야?’

‘어 거기 있잖아 뉴스에서 평당 1억이라는 동네’

‘거길 어떻게 가 너 30억 있니?‘

‘뭔 30억 여기 네이버 부동산 봐바. 우리 마포에서 드는 월세에 80만 원 더하면 반포 월세야. 초등학교에 전화해 봤는데

돌봄 교실 추첨 안 하고 오히려 미달이라는데?


그랬다 언론에서 평당 1억을 찍고 수십억이 상승했네 하지만

전세가 그래프는 내 삼성전자 주식 마냥 십여 년 간 안정적이었다.(9층에 사람 있어욧)

뉴스에서는 연일 금리 상승에 의한 이자부담이 커졌다는데 오히려 고정금리 대출은 3 퍼센트 중반에 불과해 보증금 일부를 융통하면 마포에서 학원 5-6개 보낼 비용보다 적게 들겠다는 계산이 섰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집 구경도 하고 동네도 둘러보자 하니

어디를 데려놔도 공부할 놈은 한다고 뭔 강남병이 도졌냐며 툴툴 거리는 아내.

치맛바람에 오냐오냐 자란 애들이 못살게 굴면 어떡하냐부터. 그 동네는 영어로 논다는데 기죽으면 어떡하냐 등등 강남에 관해 본인이 아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총동원해 강남을 가서는 안 될 이유들을 쏟아냈다.


‘그거 너 뉴스보고 드라마 보고 세뇌당한 거야. 서초구가 고담시티게? 살아보고 판단해도 안 늦어 ‘

‘지방 출신이라 무시해!? 어’

지방출신 무시하지 말라는 것으로 끝이 난 유쾌한 대화.


그래 가보지 뭐. 먼 미래에 운 좋게 반포 아파트를 사게 되더라도 그때는 이미 늦다. 아이에게 더 좋은 학급 분위기가 필요한 시기는 청소년기 길어야 10년 아닌가? 가보고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하면 그땐 돌아오면 될 일 아닌가.

혹시 새로 올라온 매물이 없나 네이버 부동산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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