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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Apr 04. 2016

엄동설한, 속수무책

 1년 전 쯤 중국 파트너사의 한 직원이 중국의 공산당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질색한다고 했을 때 나는 웃어넘겼다. 천안문 사태 때문인가? 공연장 출입비표조차 공안이 직접 관리하고, 시상식에 참가한 가수들을 자신들의 순서가 끝나자마자 공연장에서 쫓아내는 공안의 무소불위는 양국 스태프 모두에게 언제나 가장 큰 리스크였다. 그리고 1년 만에 거짓말처럼 한국인 500명이 한꺼번에 집결하는 대규모 공연을 아무런 해명도 없이 열흘 전에 공문 한 장으로 취소시켰다. 4억 원에 가까운 항공권을 한꺼번에 취소하고 몇억을 들여 짓던 무대를 그대로 해체해야 했으며, 2만여 장이 넘게 판매된 티켓을 모두 환불하고 250개가 넘는 호텔 객실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중국인들은 그 상황에서도 결코 그게 중국 정부의 잘못이거나 자신들의 불찰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무도한 중국 담당자 녀석 때문에 몇달간 지지고 볶았던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되자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준비해야했지만 이름은 케빈이라면서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자기 주장만 앞세우던 또라이가 망연하게 질질 짜고 있을 걸 생각하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삼재가 아직이라더니, 내 악재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대만국기를 흔든 쯔위가 문제였다. 수지의 뒤를 이을 국민 여동생 설현의 입지를 단번에 위협한 쯔위는 대만인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정작 대만국기를 흔들 자유가 없었다. 중국 동영상 중계업체는 급기야 쯔위의 공연을 제지해달라고 요청해왔다. 16살 짜리 여자아이가 한국 방송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 일이 뭐 그리 대수냐고 물었지만 상황은 대륙적 스케일의 반복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대만에서 대선을 하다니. 중국 파트너사 담당자는 만약 쯔위가 그대로 공연을 한다면 자신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고 회사는 풍비박산이 날 거라고 장담했다. 그렇다고 이미 출연이 확정된 트와이스에서 쯔위를 빼고 공연을 진행한다면 우리는 모두 한국에서 먹을 욕 때문에 배가 터져 죽고 말거라고 하소연했지만 이미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주인 중국에게 우리의 입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쯔위 덕분에 중국 비즈니스 자체를 전부 날려먹을 상황이 되자 다급해진 JYP는 쯔위에게 대중국 사과문을 낭독하도록 하는 악수를 뒀고 사태는 설상가상이었다. 그들의 얕은 수는 도리어 중국과 대만을 모두 자극하는 자충수가 되었다. 

 "우리가 언제 쯔위에게 사과하라고 했습니까? 중국은 쯔위에게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압니다. 16살 짜리 아이돌 신인에게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쯔위는 더러운 정치의 희생양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짜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쯔위와 박진영이 마치 자신들이 중국으로부터 압력과 핍박을 받아서 이렇게 사과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피해자처럼 자신을 포장하면서 중국인들을 더 자극하고 있다는 겁니다." 흥분한 중국 측 담당자는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였고 중국 자본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된 우리들은 연신 속수무책이었다. 완다그룹의 상속자 왕쓰총이 서울의 클럽에서 병당 백만 원이 넘는 '크리스탈' 샴페인을 짝으로 마시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쇼핑하는 요즘, 우리 중 그 누구도 무도한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쯔위가 대본과 큐시트를 무시하고 1분이 넘게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중국 담당자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MC의 애드립이었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해도 소용 없었다. 나는 뭘 잘못한 건지도 모른 채 중국발 엄동설한에 '뚜이부치, 뚜이부치' 앵무새처럼 연신 중국에 잘못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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