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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Apr 04. 2016

신영복

 서도의 관계론은 서도의 미학이 '관계'를 중시한다는 뜻입니다. 우선 서도는 서양에는 없는 장르입니다. 서양에는 캘리그래피, 펜맨십이란 개념이 있지만 그것을 서도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글자의 조형미 이상이 못 됩니다. 서도의 미학이라는 것은 형식미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관계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愚公移山'을 쓴다고 합시다. 첫 획을 너무 위로 치켜 그었다고 해서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쓸 수는 없습니다. 인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우고 다시 쓰거나 개칠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다음 획으로 그 실수를 만회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字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 보완해야 합니다. 한 행行은 그다음 행으로, 그리고 한 연聯은 그 옆의 연으로 조정하고 조화시켜 가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써야 합니다. 그것도 필맥筆脈과 전체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써야 합니다. 

- 신영복, [담론], 314쪽, 2015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밀양의 수재는 간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전향서를 썼다. 그렇다면 그는 간첩은 아니었다한들 최소한 '1세대 종북좌파'였던 게 아닐까? 심지어 그의 사상적 스승이었다는 노촌 이구영은 명실상부한 남파공작원이었다. 통혁당은 박정희 정권의 조작이었지만 그가 사회주의자였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응답하라 1988]이 소환한 시절이 지날 즈음 세상으로 전향한 신영복은 침묵한 채 서도와 고전에만 매달렸다. 나는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에 전향하여 전두환과 노태우가 지배하는 세상에 나왔을 때 마주했을 막막함과 참담함을. 오늘날 진보세력의 올무가 된 모든 알리바이의 아이콘으로서 20년이 넘도록 세상과 격리됐던 한 인간이 자유를 되찾았을 때 할 수 있었던 일은 막상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믿음은 끝내 공허하고, 박정희에 의해 감옥에 가둬졌던 그는 박정희의 딸이 집권하고 있는 수상한 시절에 세상을 떠났다. 신영복이라는 지나간 시대의 고색창연한 아이콘이 마지막까지 소박하게 남기려했던 것이 '같이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다면, 조선일보가 그에게 '만해대상'을 안겼다고 분노한 조우석 같은 인물이나 그가 전향한 '국민스승'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개탄한 '남조선 무자헤딘' 모두에게 그의 일생이 좋은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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