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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Apr 04. 2016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

 오늘날 외계를 그대로 캔버스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다. 외계란 이미 알고 있는 데이터로서의 대상물이 아니며 불확정한 세계의 미지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의한 표현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고는 해도 현재로는 데이터와 바꿔짜기와 이미지의 재현을 넘을 방도는 보이지 않고, 그에 의한 행위를 외계와 관계시키는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이제부터의 회화는 외계와의 관련과 대응에 있어, 스스로의 타자성과 미지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의식과 신체를 매개로 하여, 이쪽과 저쪽에 중개항 one cushion을 두고 맺어주는 건전한 창조력의 날개를 뻗는 것이어야 한다. 


- 이우환/김춘미, '회화에 있어서의 추상성의 문제', [여백의 예술], 122쪽, 2002년


 이우환은 정말 자신의 그림을 샤또 무똥 로칠드 2013 빈티지에 넣는 댓가로 와인을 받았을까? 어떤 빈티지는 6천만 원이 넘는다는 이 와인의 라벨에 그림을 제공했던 다른 화가들의 이름을 듣고 보니 단색화에 쏟아지는 각광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한 점에 21억 원을 받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가 수백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모습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의 극한이지만 정작 정상화,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등 대부분의 단색화 작가들은 한창 작품활동을 하던 70년대에는 자신들의 작품이 크리스티에서 팔리는 시절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고, 40년만에 그런 날이 왔지만 수십 억원의 돈타령은 여전히 남의 얘기다. 세상은 갈수록 불가해해지고 '미술산업'은 늘 한술 더 뜬다. 하종현의 작품은 2014년 이전까지 경매에서 받았던 최고가가 고작 13,303 달러였고 그나마도 그 수익은 모두 수집가와 화랑의 몫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이런 그림을 그려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고 이동엽은 2013년에 죽었지만 한국의 미디어 어느 곳에서도 그의 부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40여 년이 지나 구겐하임과 MOMA에 이들의 그림이 걸리고 프리즈와 크리스티에서 단색화는 차이니즈 버블 이후 최고의 블루칩이 되었다. 박정희가 지배하던 문화적 암흑기에 캔버스에 자폐적 추상을 그렸던 작가들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에서 새삼 세상이 자신들의 작품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하지만, 지난 세기 모더니즘 예술이 추구했던 새로움은 길을 잘못 들었다.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일으킨 분진 같은 것으로, 그로 인해 창작은 더더욱 곁길로 빠지게 되었다. 새로움의 선언이 관례화되고, 새로운 것들이 과잉생산 되면서, 이내 새로움의 이념 자체가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어떤 형식이라도 이내 또 다른 새로움에 의해 교체될 공허한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무궁무진하고 부담 없는 새로움의 신앙은 예술의 상품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제 예술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별것도 아닌 작은 차이에 집착하고, 그것을 열광적으로 소비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예술이론들은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강박적으로 발견해내고 보고하는 도구적 학문으로 전락해갔다. 오늘날 수많은 이론과 작가론들은 작품들 간의 차이에만 주목함으로써 정작 작품 자체와의 만남은 교란한다. 


- 심상용, [시장미술의 탄생], 96쪽, 2010년


 미술은 거의 유일하게 일회적인 예술적 체험을 영원히 사유화할 수 있는 장르였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 미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현대미술은 아예 가장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투자상품이 되었다. 찰스 사치의 기획 프로젝트 YBA의 리더 데이미안 허스트는 그의 작품이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 미술품 거래 시장에서 가장 짜증나는 측면은 시장에서 컬렉터들이 작가들에게 싼 값에 작품을 사들여 제 2시장에서 비싸게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프라다에서 망토 하나를 2천 파운드에 사서 바로 그 옆의 중고상에게 20만 파운드에 파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 이런 순환이 만들어졌는가? 예술은 처음부터 비싸야 한다. 주머니가 두둑한 신사들이 제 2시장에서 큰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욕망은 심지어 대한민국에 '아트펀드'의 출범까지 가능하게 했다. 3년 6개월 만기에 목표 수익률 17.36%의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2007년에 출범한 이 펀드는 골든브릿지자산운용주식회사가 맡았고 '돈이 될' 작품과 작가를 선정하는 일은 박영덕화랑을 위시한 5개 화랑이 10억씩 갹출하여 만든 한국미술투자주식회사에서 맡았다. 이 펀드는 어떻게 됐을까? 2012년까지 1% 수익률에 허덕이던 '한국사모명품아트펀드'는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끝내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 역시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부질없는 짓일까? 


사치는 개막식을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초대장을 보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 전에 초대합니다. 혹시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보다 더 구역질 나는 것을 발견한 분이 있다면 제게 꼭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한 특별 개막식 다음날 이 전시회는 일반 대중에게 개방됐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온 관람객들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전시장을 걸어 다녔다. 이들의 행동과 표정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장례식장에서 방명록에 서명하던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현대미술 작품 전시회에서 흔히 그렇듯, 이 전시회의 관람객 중 누구도 작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시 자신만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작품을 모두 보고 나서 조용히 대화하며 그 경험을 마음 깊은 곳에서 흡수할 뿐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떠한 기쁨도, 충격도 드러나지 않았다. 


- 도널드 톰슨/김민주 송희령, [은밀한 갤러리], 36~37쪽,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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