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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chroid Mar 15. 2024

그저 무승부

三峯鄭先生陶隱李先生陽村權先生相與論平生自樂處

三峯曰 朔雪初飛 貂裘駿馬 牽黃臂蒼 馳獵平蕪 此足樂也

陶隱曰 山房靜室 明窓靜几 焚香對僧 煮茶聯句 此足樂也

陽村曰 白雪滿庭 紅日照窓 燠室溫堗 圍屛擁爐 手執一卷 大臥其間 美人纖手刺繡 時復停針 燒栗啖之 此足樂也

鄭李兩先生大笑曰 子之樂亦足起予也


- 徐居正, '三賢論自樂處', [太平閑話滑稽傳]


삼봉 정도전, 도은 이숭인, 양촌 권근이 함께 자신만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정도전은 북방에 첫눈이 내릴 때 담비 가죽을 입힌 준마를 타고 누런 사냥개와 사냥매를 데리고 거친 들판에서 사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숭인은 고요한 산방의 달빛이 환한 창가에서 편한 책상에 앉아 향불을 사르며 스님과 차를 마시고 시를 짓는 일이라고 했다.

권근은 흰 눈이 가득 쌓인 정원에 붉은 해가 창을 비출 때 따뜻한 방구들에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끼고 누워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운 여인이 고운 손으로 수를 놓다가 바느질을 멈추고 밤을 구워 먹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정도전과 이숭인이 크게 웃으며 권근이 말한 즐거움에 공감했다.


- 서거정, '삼현론자락처', [태평한화골계전]



이 정겨운 대화의 주인공들 팔자는 마치 자기실현적 MBTI처럼 기묘하게 풀렸다. 이숭인이 제일 먼저 정도전에 의해 처형됐고,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살해됐으며, 권근은 이방원에 줄을 섬으로써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끔살을 면했다. 인생은 그렇게 즐거움도 잠깐이지만 끔살도 순간이니 그럭저럭 본전인 걸까? 남부럽지 않게 나이를 먹고 나니 이제 인생의 즐거움보다 인생의 허무와 본전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도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내 '자락처'는 방구석이 아니면 해외의 어느 도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갑자기 일상에서 빠져나와 아무 상관 없는 국외자가 되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은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는 느낌. 관광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정해진 호텔에서 자고 일정에 맞춰 사람들을 만나 먹고사는 일을 이야기하는 게 전부일 때, 그래서 새삼 산다는 게 별거 아닌 거 같아지는 순간, 삶의 근거인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 찾아오는 식이다. 코로나 때문에, 그리고 그냥 일이 이상하게 풀리는 바람에, 근 5년 만에 인천공항 터미널에 들어서면서 마치 이상한 회한 같은 기분에 잠겼다.


건기여야 할 방콕에는 출장 기간 내내 비가 쏟아졌다. 엄청난 교통체증 때문에 하루 종일 미니밴 안에 앉아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할수록 과거에 방문했던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이 떠올랐다. 국외자가 되어 남의 삶을 구경하는 삶이 적성이라서, 나는 결국 삶에 뿌리내리지 못한 걸까. 낯선 도시에선 내가 애지중지하던 것들은 대개 아무 소용도 없었고 여행이 끝나면 삶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로밍 안내를 빼먹었는지 신호 대기 중이던 내 차를 미친 속도로 들이 받았던 아줌마의 보험사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희가 지급해 드릴 액수는 치료비와 교통비 등등을 고려해서 87만원입니다. 인터넷 경험담들에선 300만원이 넘는 합의금 이야기도 있었지만 삼성화재의 담당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처음부터 회사 앞 정형외과에서는 도수치료는 언감생심이었고 나는 이상하게 아픈 데가 없었다.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없는 일도 만들어내야 할 판에 사람들의 조언처럼 자생한방병원에 드러누워 삼성화재에 본때를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87만원이라니. 저는 적어도 100만원은 받아야겠습니다. 정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삼성화재 직원은 입금을 마치고 치료 잘 받으라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다. 100만원이요? 삼성화재가 아주 신났겠네요.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냥 무승부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출장지에서도 계속 월드컵 타령이었다. 인생의 재미는 역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월드컵 보는 맛 아니겠습니까? 폭우가 쏟아지는 건기의 방콕에서도 아저씨들과 청년들의 '자락처'는 단연 축구였고 우리는 결국 호텔 근처 스포츠 펍에 모여 축구를 보기로 했다. 방콕에서의 월드컵은 안 그래도 이상했던 내 기분을 더 야릇하게 만들었다. 이제 제 인생에서조차 국외자가 된 마당에 월드컵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경기 초반 뭔가 몸이 안 풀린 듯한 우루과이와 대한민국이 서로 어영부영하자 사람들은 마치 한국의 호프집인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나는 축구보다 축구에 저토록 순전하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구경하며 아연실색해졌다.


오만원빵 어때요? 출장 그룹의 최연장자로서 분위기라도 띄워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내기를 제안하자 사람들은 더 흥이 오르는 눈치였다. 일본도 독일을 이겼는데 저는 2대 1로 한국 승에 걸겠습니다. 그런데 나의 근본 없는 낙관과 달리 축구 중계를 한 번도 온전히본 적이 없다던 한 청년은 0대 0 무승부에 걸겠다고 했다. 순간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래. 평가전 내내 병림픽급 경기력을 보여준 우리 국대에게 우루과이전 2대 1 승리라니. 무승부도 한산대첩인 마당에 가당키나 한 소린가. 청년보다 못한 노인의 통찰.


사람들이 베팅을 하는 동안에도 결정적인 순간들이 종종 지나갔고 사람들이 고함 같은 탄식을 내뱉을 때도 나는 0대 0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다.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일본이 독일을 이겼다고 우리가 우루과이를 이긴다는 예측이라니. 갑자기 남의 행운과 성공을 구경하면서 그걸 내 인생의 위안으로 삼아 얼토당토않은 베팅을 해왔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졌다. 보험금 100만원, 그리고 이긴 거나 다름없는 0대 0. 그저 비기기만 해도 다행인 암울한 인생 스코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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