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an 26. 2024

끼어들기

오후 6시가 되면 회사 앞 보도에는 긴 행렬이 생긴다. 지하철역 입구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행렬은 퇴근 인파가 늘어날수록 속도가 느려져 점차 긴 줄이 된다. 적어도 오십 미터는 되지 않을까? 역 방향으로 오는 이들은 걸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줄 끝에 서게 되지만, 역 입구 근처 회사에서 나오는 나 같은 사람은 줄 끝에 서려면 역과 반대 방향으로 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냥 ‘행렬’이라면 중간쯤으로 ‘합류’하면 될 일인데, 흐름이 정체되어 줄이 만들어지니까 합류라기보다 새치기 느낌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 거슬러 올라가 줄 끝에 서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급할 때는 역 입구로 바로 가서 그냥 훅 ‘끼어’ 들어간다. 마음속으로 '이건 끼어드는 게 아니고 합류하는 거예요'라고 외치면서.


운전을 하다 보면 차들이 촘촘한 차선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깜빡이를 켜고 차 앞부분을 슬쩍 들이대는데, 그러면 '어딜 감히 끼어들려 해' 하듯 줄 지은 차들은 빈 공간을 급히 채워간다. 서로 입장의 차이를 느낀다. 들어가려는 차는 갈 길 가려고 차선을 바꾼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것을 자기 앞에 끼어든다고 여긴다. 끼워준다 해도 큰 지장은 있지 않고, 앞의 앞이나 앞의 앞의 앞으로 들어와도 결국은 마찬가지인데 유독 내 앞으로 들어오는 차는 얌체 같고, 뭔가 지는 것 같고, 나의 빈 틈을 보인 것 같아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다. 그래서 상대방이 깜빡이를 켜든 말든 모른척하며 앞차와 간격을 계속 좁혀간다. 묘한 쾌감까지 느끼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 '끼어들기’라는 말도 생긴다. 한산하고 널널한 길 위에서나, 넉넉한 자리를 앞에 두고 가는 길에서는 끼어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멈춰 앉아 있을 때도 끼어들기란 없다. 나에게 끼어드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뭔가 의도를 가지고 붐비는 길 위에서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겠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 또한 꽤나 번잡스러운 길이라서 크고 작은 끼어들기의 연속이다. 시작부터 끼어들기였다. 부모님 삶에 훅 끼어들 때 몇 달 전부터 깜빡이는 켜고 들어왔던가. 그 끼어들기를 기꺼이 받아주고 챙겨준 분들이 있던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운전을 해보면 안다. 끼워준 사람은 끼워준 차 뒤에서 그 사실을 한참 기억하지만 끼어든 차는 금방 그 사실을 잊고 내 갈 길만 생각한다. 사랑도, 연애도, 사람 사이 관계는 모두 끼어들기 과정이다. 시간의 선후관계나 줄 서기란 없고 깜빡이조차 없다. 갑자기 또는 어느새 그가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으면서 삶에 끼어들기가 시작된다. 우연의 연속이 필연이 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차선을 하나로 합치는 일 같다. 이제부터 같은 차선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간다. 그 차선에 또 어느새 아이들이 끼어든다. 문득 뒤 돌아보면 넉넉히 끼워주셨던 분들은 이미 다른 차선으로 떠나가셨다. 나중에 나도 그 차선으로 다시 합류하겠지 생각한다.

요즘에는 운전할 때 촘촘한 차선에 있더라도 앞 공간을 좀 넉넉하게 두고 깜빡이를 켜는 차가 있으면 공간을 내어준다. 의도를 받아들이는 일, 수용을 통해 상대에게 안도감을 주는 일, 그 일로 상대와 내가 좀 더 행복해지는 일, 고마움을 기억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 나중에 기꺼이 다른 차선으로 보내주는 일, 그렇게 끼어들고 끼워주는 일,  그것이 잘 사는 삶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의미의 발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