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태양을 돌고 있는 지구와 그 위에 타고 있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구는 65억 년 전 태어나면서부터 꾸준히 태양 주위를 맴돌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1년에 한 바퀴, 65억 번 중에서 100번 남짓 지구와 함께 태양을 돌다가 사라지겠다. 65억과 100, 아뜩한 차이에 감이 오지 않다가도 65억 원과 100원이라는 화폐 단위로 바꾸면 바로 이해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적 인간이구나. 그리고 나는 참 사소한 삶을 살고 있구나.
사는 일에 거창한 의미는 두지 않으려고 한다. 지구라는 커다란 롤러코스터를 타고 태양계 놀이 공원 궤도를 수십 번 도는 동안 겁내거나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내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와 지구 동승자로 타고 내리는 자연과 사물들을 보면서 내 사소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살다 보니 의미라는 것은 찾는다기보다 조각을 맞추어 만드는 일이고, 발견하기보다는 하나둘 발명해 나가는 것 같다.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할 때 의미는 비로소 태어난다.
소소하고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의미가 된다. 숫자로 이해되지 않고 단위로 환산되지도 않는 것들. 이를테면 보고 싶어 출렁이는 마음, 갑작스레 터지는 웃음, 그대로도 괜찮다는 위로, 은근히 따끈한 사랑 같은 것.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 사이, 인연과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화학작용을 통해 의미는 발명된다.
한겨울밤, 모닥불을 피우고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타오르는 색색의 불꽃, 타닥거리거나 쉭쉭 대는 소리, 날아올라 사라지는 불티. 장작이 한참 타고난 뒤 부서진 숯이 되어 붉게 일렁일 때 나는 느꼈다. 장작은 활활 타오를 때보다 숯불이 된 이후에 훨씬 더 뜨거웠다. 왜 불꽃보다 불씨가 더 뜨거울까 생각하다가 이유를 알았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앉아 있었다.
불이 타오를 때는 불꽃에 닿을까 두려워 좀 떨어져 있다가 불길이 잦아든 뒤에 좀 더 다가서니 뜨거웠던 것이다. 나무가 뜨겁게 타올랐기에 불씨가 그 열기를 담고 있었겠지만, 그보다 한 발짝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된 것이 뜨거움을 만들었다.
나는 소망한다. 비록 내가 젊음을 다 태우지 못했더라도 어느 정도 불꽃이 잦아들어 붉고 뜨겁게 일렁이는 불씨처럼 되기를. 그래서 활활 타오르면서 만들었던 여러 의미의 열기를 가깝게 한참 전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대들의 삶이 지금보다 더 따뜻해지기를. 활활 타오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