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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29. 2024

시차

일주일간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과 뉴욕 시차는 13시간이라 비행기를 14시간 타고 도착하면 겨우 1시간이 지나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가면 한국은 밤늦은 시간이지만 뉴욕은 아직 점심 전이라서 하루 생활을 위해서는 시차 극복이 필수였다. 다행히 나는 크게 어렵지 않게 출장 기간을 보냈는데, 혹시 한국에서 늘 피곤한 채 살아서 시차로 더해진 피곤함이 별로 표가 안 났던 걸까 잠깐 생각했다.

영화 '패스트라이브즈'(2024) 포스터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는 패스트라이브즈(Past Lives). 한국에서 12살 초등학생 때 친했던 여자 아이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는데, 남자는 24살에 그녀를 SNS로 다시 만나 영상 통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서로 시차가 있다 보니 여자가 외로운 밤에 남자는 수업에 들어가느라 분주했다. 태평양을 건너 만날 정도까지는 안되었던가, 같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채 둘은 연락이 끊겼다. 12년이 더 지난 뉴욕, 여자는 이미 현지인과 결혼했고 남자가 찾아온다. 그렇게 남편과 옛 친구 사이에서 여자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 영화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이 '전생'과 '인연'이라는 단어를 소재로 서양인들에 다가갔다. '그때 만약 이랬었더라면...'이라는 보편적인 후회를 '그래 인연이 거기까지였어'라는 애틋한 체념으로 정리한다. 시차는 단지 시간대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백아 앨범 '편지' 중 '시차'

가수 백아가 '시차'라는 제목의 신곡을 발표했다. 가사를 보면, 사랑하는 마음을 고요한 숨에 담아 보내는 일과 그 마음이 무사히 가서 닿는 일 사이의 시차로 사랑은 어려웠다는 내용이다. 서로 생각하는 마음의 시간차와 속도의 차이에 따라 인연이 되기도 안되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다. 새로운 관계나 사랑이 힘들다면 둘 사이 마음의 시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에 상대를 태우고 옮겨 타고 하는 과정에서 시차 적응에는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150년을 사는 장수거북과 15년을 사는 고양이에게나 느끼는 삶의 길이는 비슷해서, 거북이에게는 고양이보다 시간이 열 배 빠르게 흐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보면 반려견이 낮동안 집에서 혼자 주인을 기다리면서 보내는 시간은 사람으로 치면 3~4일을 꼬박 기다리는 느낌이란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오면 그렇게 반가워하는 것일까? 주위의 많은 생명들, 그늘을 만드는 나무, 가지 위 새 한 마리, 길고양이, 벌레들도 각자 다른 시간을 보낸다.


뉴욕에 오니 시차가 나는 한국에 있는 이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오랜만에 낯설었다. 밤에 호텔에서 연락을 해보면 가족들은 벌써 다음 날 아침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 길은 러시아를 우회하느라 15시간 걸리는 비행이었는데, 시차가 더해지니 28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어떤 시차는 극복과 적응의 과제를 가진다. 공간의 시차는 이렇게 극복이 되었으니, 마음의 시차는 계속 잘 적응해 나가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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