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al Book vol.2
역시 날이 갈수록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하나보다 싶다. 재즈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재즈'란 폭이 넓지는 않다는 걸 점점 더 깨닫는다. 중저음의 색소폰 소리가 좋아 찾다 보니 스탠더드 재즈에 색소폰이 많아 좋아했을 뿐인 것이다. 스윙걸즈에서 만난 귀여운 빅밴드만 보고서 빅밴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윈드 오케스트라에서 글렌 밀러 메들리, 아메리칸 그래피티(대체로 느끼한 테너 색소폰 솔로가 많음 주의), 베니 굿맨(대표곡: sing sing sing) 곡을 할 땐 그래도 연주회 곡 중에선 재즈 편곡이 들어간 곡을 좋아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전주만 들려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기둥 같은 색소폰 선배가 알려준 jazz radio 어플은 작업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었다. 여러 테마로 분류된 재즈를 들을 수 있어서 취향을 아는 데 도움이 됐다. 색소폰 재즈를 듣다가 집중이 안 되어서 재즈 발라드를 주로 듣다가 요즘 최애는 쿨재즈다. 유투브와 어플을 통해서 빌 에반스, 마일스 데이비스, 폴 데스몬드,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쳇 베이커, 스탄 게츠, 덱스터 고든, 게리 멀리건을 알게 됐다. 왠지 이 음색이 참 좋다 하고 음악 제목을 보면 떡하니 어플에 그들의 이름이 떠 있다. 신기하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있는데도, 그들의 소리는 느낌이 다르다.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MY REAL BOOK VOL.2를 찾게 된 건 빅밴드를 연주자가 아닌 '관객'으로 체험했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빅밴드 BBA에서 공연을 하고서 관객으로 온 사람들에게 어땠는지 물어봤다. 공연 때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박수와 호응을 받았지만 진짜 소감이 어떤지 궁금했다. 윈드 오케스트라에서 공연을 할 때면 대부분의 관객은 역시 아는 곡을 가장 편안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연주하는 내게도 처음 만난 곡들이었으니, 관객에게도 약간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비슷한 소감을 들었다. 다음 BBA 공연을 준비하는 김에, 입장을 바꿔 재즈 앙상블 공연을 만나서 느낀 점을 접목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도 관객으로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까?
재즈를 사랑하는 분들이 무엇 하나 이유 없이 선택하지는 않았을 터. 의도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추측해 보자. 공연 제목인 My real book의 의미. 1970년 버클리 음대 학생들이 스탠더드 재즈곡을 담아 만든 악보 모음집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코드 진행 위주로만 적혀 있어서 Fake book이라고 불렀지만, 나중에는 멜로디 라인 등이 포함된 리드 시트가 들어가면서 Real book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재즈 거장들의 곡을 자신들만의 특색을 살려 연주했고, 후반부에는 스스로 만든 오리지널 곡들이 있으니 my real book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닐까.
재즈를 나무위키와 재즈 블로그, 유투브 등으로 얕게도 배웠지만 역시나 역사의 흐름은 늘 정반합이 존재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모두 함께 춤을 추기 좋은 들썩들썩한 스윙 재즈에 대한 반발감으로 모던 재즈인 비밥의 시대가 열렸다. 또 그 비밥의 현학적인 느낌이 어렵다는 인식에 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서정적인 느낌을 가미한 쿨 재즈가 미국 서부에서 나타났다. 그 또 그 쿨재즈보다는 좀 더 뜨겁고 기존의 비밥보다는 덜 난해한 하드밥이 미국 동부에서도 함께 등장한다. 그러다 다시 대중에게 조금 친밀했던 기조에서 벗어난 프리재즈에서 다시 그전의 느낌으로 돌아가려고도 한다. 이렇게 보니 나는 가장 대중적인 편인 스윙 재즈와 쿨 재즈를 좋아하고 있었다.
음악이란 정답이 없어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의 두 귀는 멜론 탑 100 귀와 음악 평론가의 귀 어딘가 사이에 있다. 지나치게 대중적이면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음악성이 좋은 곡은 또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곡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음악을 듣는 우리만큼이나 그 음악을 삶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는 뮤지션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취향에 나의 취향을 일부러 맞추고 싶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이번 공연은 비밥~하드밥 사이의 곡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찰리 파커의 'Anthropology', 찰리 파커의 곡으로 되어있지만 마일드 데이비스가 원작자라고 주장하는 'Donna Lee', 마일스 데이비스의 'All blues', 조 핸더슨의 'Black Narcissus'를 비롯하여 2019년 발표한 'tschüss Jazz Era 앨범에서 타이틀곡 'Stolen Yellow', 'Nach Vien 224', 'QUASAR' 등을 쉼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이 중에는 내가 연습해야 할 'Donna lee'라는 곡이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알고 있는 멜로디가 단순한데, 확실히 재작곡이 많이 되어있다는 것을 가장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원 멜로디는 다양한 악기의 숨을 빌려서 돌림노래처럼 나온다. 이 곡은 제작사의 실수로 원작자가 바뀌었다는 설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공동 제작자로라도 올리든지, 아니면 이 곡을 내 꺼라고 하고 싶은 마음인지 진실은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달려있는 요상한 사연의 곡이다. 손이 느린 편인 내가 도나리를 손에 익어서 날아다닐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이 곡이 또 다르게 느껴질 것만 같다.
재즈의 대표곡들이지만 익숙하지는 않았다. 여러 곡을 듣다 보니 밤- 밤- 밤- 하면서 악기들이 한데 모이는 재작곡의 느낌이 자주 나오는 것이 점점 익숙해졌다. 왼쪽에서 트롬본과 트럼펫, 알토 색소폰, 테너 색소폰, 플룻, 그리고 그 앞에는 피아노, 클라리넷 및 보컬, 드럼, 기타, 베이스 그리고 가장 앞에 지휘자가 있다.
테너 색소폰의 솔로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개인적인 취향이라 귀가 즐거웠다. 드럼이 곡 도입부에서 사르르 들어와서 깔끔하게 박자를 만들어가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베이스는 특히 콘트라베이스와 오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피아노와 드럼도 그렇지만 특히 베이스가 없는 빅밴드와 앙상블은 얼마나 심심한지는 합주를 해보면 알 수 있다. 플룻의 존재는 이번에 BBA에서 플룻이 참여하는 곡이 많은 게 특징이라 눈여겨봤는데, 플룻이 들어가니 확실히 청량하게 흘러넘치는 느낌이 곡에 생기를 주는 느낌이었다.
클라리넷은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이제는 재즈에 클라리넷의 음색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걸 앙상블을 통해 다시 알게 됐다. 마침 BBA도 이번에 플룻과 클라리넷이 등장하는 곡이 많아서 이건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반부에 보컬이 돋보인 'QUASAR'은 눈을 감고 들으니 엉뚱하게 말하자면 잠시 우리나라를 벗어난 생경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보컬이 이렇게나 곡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니. 목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라는 이야기도 생각나면서 말이다.
아직 재즈가 무엇인가를 떠올리면 '너희는 스윙을 하고 있지 않아'라는 동영상 밖에 떠오르지 않는 입장에서, 스윙을 할 줄도, 뭔지도 모르는 내가 재즈를? 뭐라 말할까 싶다. 그래도 말하자면 내게 재즈는 음악이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르다. 나만의 즉흥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나의 의도나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지를 연주자가 작사 작곡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고, 글쓰기를 습작하듯이 과거의 현재의 재즈를 계속 함께 듣고 코드마다 스케일과 흐름을 배워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고, 듣기보다 하는 것은 더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음악이 좋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빅밴드의 로망을 안고 들어와서 윈드 오케스트라를 하고, 알토와 테너를 거쳐 바리톤으로 오게 되어서는 윈드 오케스트라에서의 예상치 못한 아쉬움을 직면하게 됐다. 극강의 저음은 좋았지만 적은 멜로디와 많은 지속음이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신나는 리듬만 나와도 감지덕지할 때도 있다. 물론 큰 그림으로 보면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베이스 파트가 든든하게 짱짱한 것이 좋은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오래 함께 하자면 베이스로 가는 것이 맞고 그건 과거와 지금 모두 생각에 변함이 없는데도 그게 고민이었다.
그런 개인적인 아쉬움을 색소폰 앙상블로, 빅밴드로 풀어보려고 체험하면서 도전 중이다. 색소폰 앙상블에서는 테너 색소폰으로 늘어난 멜로디를 즐기고 화음이 예쁘게 쌓였을 때의 그 기분을 자주 느끼면서 만족하고 있다. 빅밴드는 새로운 곡을 만나면 '아유 예, 처음 뵙겠습니다' 하면서 어색해하다가, 친근해지다가, 어쩌다 보면 어떤 곡은 정도 들이고 있다. 처음 연주회에서도 카운트 베이시의 'In a mellotone'을 제일 좋아했던 걸 보면 취향이란 게 한결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멋지게 솔로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 또한 큰 공부라면 공부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재즈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답을 아낄 수밖에 없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특히 곡의 제목은 어떤 느낌으로 짓는지도 도통 잘 모르겠다. 찰리 파커가 별명이 Bird라 Ornitology(조류학)을, 그러다 내처 Anthropology(인류학)을 지은 건지, 그렇게 술과 마약으로 불타오르는 인생을 산 사람들이 blue note 때문에 재즈를 Blue로 이름 지은 것인지, 알쏭달쏭할 뿐이다.
즉흥연주가 없으면 재즈가 아닐까. 예쁘기보단 거칠고 큰 소리로 스스로를 강렬하게 들려주지 않으면 재즈가 아닐까? 내게는 재즈가 힙합 같기도 하다. 염색을 하고 자퇴를 하고, 돈과 인기를 찾는 게 힙합이 꼭 아니듯이, 내 귀에 듣기 좋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그게 힙합이고 재즈일 거라는 그런 얄궂은 생각이나 한다. 이유는 별 건 없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들에게 편하게 보여주기 머쓱함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면서도 이렇게 꾸준하게 재작곡으로 찾아와 준 재즈 앙상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에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볼 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찾아보면서 배워가는 부분도 많다. 이번에 연주에서 만나게 된 분들은 이미 유투브 알고리즘이 기억하고 있어서 잊지 않고 띄워줄 예정이다. 앨범의 'tschüss Jazz Era'의 tschüss 가 독일어로 작별하는 의미의 '안녕'이라던데, 설마 아니시죠?
* 개인적인 미션 'Donna Lee' - 테너 색소폰의 송하철 연주자님이 여기 등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clcltn_3A
* 수록곡 중에 듀크 엘링턴의 'Take the A train'을 따서 'What If Ellington Didn't Take the 'a' Train?'라는 곡이 있던데 재밌어서 올려본다.
https://youtu.be/-3zAfPuKTU0?si=r5f9S0zLxkDI-6Zw
* 처음을 시작한 Antropology와 마지막을 장식했던 QUASAR
https://www.youtube.com/watch?v=if6CV0J7jlY
https://www.youtube.com/watch?v=vTPS2qL7ToY
* 이 리뷰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