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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Jan 05. 2023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2

 2021학년도 1학기에는 고등학교에 근무했었다. 육아휴직으로 빈자리였고 학교에서는 계약연장을 원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그 학교는 업무나 생활지도 면에서는 나를 상당히 많이 배려해주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다른 기간제 교사의 견제와 무시, 교무부장의 강압적인 언사, 작은 학교니까 모든 교사가 친해져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분위기가 특히 괴로웠다.


 2020년에 잠깐 일했던 중학교에서 기간제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주었다. 일한 시간은 5주 정도였지만 그 중학교에서의 기억이 굉장히 좋았고 관사 제공, 집에서의 거리 등 여러 조건이 맞아 해당 학교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서 계약연장을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썼지만 나는 중학교로 가기 위한 면접을 보았고 당연히 합격했다(형식적인 면접이었음). 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 교무부장은 나한테 인사도 하지 않았다. 잘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학년도 2학기가 끝나고 그 해 임고는 2차에서 떨어졌다. 합격 발표일이 되자 중학교 교감선생님이 연락을 주었다. 떨어진 건 안타깝지만 올해 해당 과목 자리가 미발령이 났으므로 1년 더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 곧바로 승낙했고 또 다른 1년이 시작되었다.


 2021학년도와 2022학년도의 가장 큰 차이는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기간제 중에는 담임을 맡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물론 정교사가 되어도 담임은 안 하고 싶을 것이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새 학기 첫 주에는 코로나에 걸려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 다음 주에는 학급에 코로나에 걸린 학생이 나와 해당 반만 전면 원격수업을 하게 되어 화면상으로나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리고 동그란 얼굴들이었다. 그 얼굴들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정이 갔다. 해당 주가 지나 마침내 실제 모습을 보는 순간 근거를 알 수 없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더 잘해주고 싶고 더 챙겨주고 싶고 더 아껴주고 싶었다.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낄 줄 몰랐다. 내 코가 석자니까 필수적인 것만 해주고 크게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는 내 다짐은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상담을 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습게도 허물어졌다.


 우리 학급에는 유난히 '어려운' 학생들이 많았다. 차후에 다른 글을 통해 신상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쓰겠지만. 가정폭력으로 인해 부모와 분리되어 시설에서 생활하는 학생, 부모의 방임 및 본인의 일탈로 인해 제대로 된 출석이 어려운 학생, 다자녀인 동시에 가족 모두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한 학생, 힘든 가정환경 탓에 수시로 결식하는 학생 등등. 내 선에서 해결은커녕 대처도 어려운 학생들이 참 많이 있었다.


 겉으로는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큰 걱정이 있어 보이지 않는 학생들도 다들 자기만의 무거운 고민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당장 급한 학생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그 학생들의 문제를 모두 보듬어줄 수가 없었다. 내가 바쁘고 무능해서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반의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를 알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어떤 학생들은 친구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다. 그러면 또 다른 학생들이 그의 희생을 알아주고 고마워해주었다. 어떤 학생들은 내가 힘든 기색을 보일 때마다 힘을 주기 위해 예쁜 행동을 했다. 그러면 나는 곧바로 힘을 낼 수 있었다.


 누가 아이들은 손톱만큼 자란다고 했던 것 같다. 우리 반 학생들은 빨리 자라는 손톱이었다. 때로는 깨지고 갈려도 금세 자라나 예쁘게 다듬어지는. 내가 신경쓰지 않을 때에도 내버려 둘 때에도 금세 자라는 손톱 같았다.


 어제 종업식이 있었다. 1학기에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지고 차분해진 눈빛들을 마주하니 이상하게도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들에 대한 후회가 일어났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1년 중 가장 긴 종례를 이어나갔다. 한 명씩 호명하며 1년 간의 모습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있을 날들에 대한 응원을 해주었다. 대본을 써 온 것도 아닌데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동안 학생들을 보면서 항상 그런 말들을 해주고 싶었나 보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닫았지만 그게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학생들은 1년 간의 기억을 빠르게 잊어버리고 마지막 종례도 곧 잊겠지만 그게 완전한 망각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문득 생각이 날 것 같다.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이, 목소리가, 이야기가, 아픔과 슬픔이, 기쁨과 즐거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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