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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Jan 02. 2023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1

 이라는데 나는 꺾였다.


 어제는 임용 1차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정체 모를 시험에서 불합격하는 꿈이었다. 꿈은 반대라길래 솔직히 약간 기대했다. 아니 기대했다기 보다도 지금까지 1차는 잘 붙어왔으니까 당연히 붙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징크스가 있었다. 붙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떨어지고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 붙는다는 것이다.


 어제는 또한 학교 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게임을 시켜놓고 잠깐 준비물을 가져온다는 핑계로 교무실에 들러 결과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합격자 명단에 없다고 했다. 눈물이 덜덜 흐르고 손발이 줄줄 떨리는 상태로 컷을 확인했다. 난생처음 보는 높은 점수가 컷이었다. 지금까지의 시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나는 1차에서 불합격하고 말았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랐으나 일단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므로 신속하게 전화를 돌렸다. 나에게 있어 약간의 행운은 부모님이 합격을 닦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인데 역시 부모님은 건강한 게 최고라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다지 건강하지도 않은 내가 더 한심스러웠다.


 교감선생님께도 불합격 소식을 전했다. 말하는 게 맞는 일인지 고민이 들었으나 그럼에도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부모님께 말했을 때는 흐르지 않던 눈물이 교감실에 들어가자마자 쏟아졌다. 누가 수도꼭지를 망치로 부숴버린 것처럼 눈물이 질질 샜다. 이런 소식이나 전하는 내가 실망스럽고 프로페셔널하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워 더 눈물이 났다. 교감선생님은 이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데 안 되는 게 어딨냐며 같이 눈물을 흘리셨다. 더 있다가는 교감실에 홍수를 일으킬 게 두려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채 재빨리 빠져나왔다.


 게임이 한창일 교실에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학생들 앞에서도 울 것 같았다. 교무실에 있자니 다른 선생님들이 내가 우는 소리에 불편해하실 것 같았다(실제로 불편해하셨다). 어쩔 수 없이 게임을 대충 마무리하고 조퇴를 쓰고 나오는 길에 그나마 축제날이라서 개꿀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동 교과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나를 정말 잘 챙겨주셨던 선생님이라서 전화가 올 것 같긴 했다. 관사에 혼자 있냐고 해서 춘천에 간다고 하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전화를 받는 순간 또 눈물이 나서 길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아마도 혼자 관사에 있다가 죽을까 봐 걱정되어서 전화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는 말아야겠다, 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회복탄력성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아주 폐급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버거킹 치킨버거 세트를 시켜 먹으니 기분이 나아졌다. 콜라를 한 병 다 비우니까 살 맛이 더 났다. 골이 울려 눈물도 더 흘릴 기력이 없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작년에 2차 준비를 할 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내가 일하는 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인데 수업 실연을 연습하려면 학교 건물을 써야 하니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히터를 아무리 틀어도 차가운 책상에서 손발이 얼어터져 가면서 시책을 외우고 또 외우고 수업을 하고 또 했다. 그런데도 떨어졌다. 소수점 차이였다. 1차 점수가 컷에서 많이 높지 않았기에 예상은 했지만 너무 아까운 점수였다. 그때는 슬프지도 않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준비를 하는 데 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올해는 2차를 볼 일이 없으니 그 시간 동안 뒤지게 놀면 된다.


 아무리 긍정회로를 돌려 보아도 나만 어렵게 사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남들도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며 그만의 고통도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나에게 닥친 슬픔이 제일인 것 같이 아프다.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 같다(이건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나만 안 되는 것 같고 나만 불리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뭐가 모자란가 싶기도 하다. 왜 남은 되고 나는 안 되는지 질투와 열등감이 뒤섞인 내 속에서는 악취가 난다. 남 탓을 하고 싶다가도 어차피 내가 못나서 떨어진 것임을 알기 때문에 할 변명도 없다. 내년에는 나이 제도가 바뀌어 한 살 줄어드니까 괜찮아지겠지라며 정신승리를 해보기도 한다.


 나는 언제쯤 이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재작년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기간제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서 글을 써놓고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간제로 두 해를 겪어보니 이게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언제쯤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6월부터는 불안해진다. 7월과 8월이 되면 불편해진다. 9월쯤 되면 시간이 느려진다. 10월이 넘어가면 무기력해진다. 11월에는 무감하다. 12월에만 살짝 숨통이 트인다. 이런 삶의 굴레가 끝없이 이어진다. 어디를 가도 환대받지 못하는 기분이 몇 년째 바뀌지 않는다. 모든 감각과 감정에 예민해서 다감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내가 무감각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언제쯤 다시 삶을 기민하게 감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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