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Intro
4학년 때 본 시험은 1차에서 탈락했다. 컷보다 5점이 낮았는데 차마 아깝다고 할 수도 없는 점수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나의 탈락을 예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n개의 임고 과목 중 가장 어려운 어떤 과목을 잘하지 못했다.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1년 간 휴학을 했기 때문에 25살에 대학 졸업장을 얻었다. 졸업장과 함께 교원자격증이 내 품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조금 더 고급진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교원자격증을 가진 임고 불합격자가 학교에서 가질 수 있는 지위는 몇 가지가 있다.
1. 시간강사: 수업 하나 당 25000~40000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수업을 하는 직업이다. 벽지로 갈수록 시급이 높아진다. 각종 행정업무는 일절 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수업만 하게 된다. 시간강사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해당 학교의 수업시수가 너무 많은 데 비해 교사 수는 적기 때문에 남게 되는 수업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정교사가 아프거나 각종 시험 출제에 들어가서 출근하지 못하는 n일~n달 간의 기간 동안 수업 시수를 채워주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든 경우를 다 겪어 보았다.
2. 전일제 강사: 하루 종일 근무하면서 수업을 하는 직업이다. 이건 사실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뭐라 할 말이 없다.
3. 기간제 교사: 내가 이것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아무튼 나는 작년을 상당히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3군데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시간강사 업무를 하고 동시에 각종 과목을 넘나들며 과외도 진행했다. 와중에 틈틈이 공부와 취미생활을 병행하는 것도 늦추지 않았다.
작년 11월에 두 번째 시험을 봤다. 1차를 붙었다. 사실 너무 공부를 안 해서 내가 붙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정신상태로 2차 준비가 쉬울 리가 없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그렇게 술술 나오던 수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시험을 친 지역은 면접이 곤란하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는데도 나는 너무 게으르게 면접 준비를 했다. 어쨌든 나는 2차에서 떨어진 인간이 되었다.
1차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도 이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2차 탈락이 더더욱 열 받는 이유는 내가 교사가 되면 안 된다는 선고를 받은 기분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하는 건... 그럴 수 있지만 수업실연에서 떨어진다는 건 너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대상포진을 처음 겪었다. 일어날 수도 그렇다고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는 2주 간의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너무나도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금융 치료로 해결된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대상포진 때문에 뒹굴고 다닐 때도 나는 2021년을 살아내야 했기에 정신이 들 때마다 기간제 채용 공고를 뒤졌다. 그러다가 어떻게어떻게 해서 서류가 통과되고 또 얼레벌레 면접을 봐버린 나는 모 고등학교에 반년짜리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겪게 되는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