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망치러 온 파괴자
편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게 편두통이란 무엇인가. 4년 전 내 인생에 찾아와 2-3년간 내 인생은 마구 헤집고 떠났던 내 인생의 파괴자가 아니던가.
솔직히 말해 난 겁을 먹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겁을 아주 많이 먹었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사람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럼 아는 고통이라면 두렵지 않나? 아니다. 그 또한 두렵다. 말하자면 편두통은 내게 아는 고통이다. 내 인생의 최악의 통증을 선사했던 원흉. 파괴자. 악마.
나는 통증 10의 편두통을 겪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두렵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 이전 편두통은 ‘만성’으로 2년 넘게 지속되었다. 그래서 두렵다. 지금 이 몇 주가 이걸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어서.
이번 편두통의 시작을 복기해 본다.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쯤 편두통이 생기곤 했다. 강도가 세지도 않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문제는 이번 달부터다. 내가 특정한 고민을 깊게 하면서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편두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더 강하게, 더 잦게.
엊그제 작년에 졸업했던 신경과에 일 년 만에 가보았다. 머리에 열아홉 개의 전극을 붙이고 뇌파 검사를 했더니 머리가 온통 새빨갰다. 만성편두통이라고 했다. 다시 편두통 예방약과 급성기 약을 먹으며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병원에서 돌아와 급성기 약을 두 개나 먹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엔 상태가 더 심해져 세 알을 먹었다. 2주 분으로 10알을 받았는데 이틀 만에 다섯 알을 먹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편두통으로 고생할 때는 일을 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일을 하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아져 버렸다. 요새 내 편두통의 양상은 두통이 하루 종일 지속되는 식이다. 급성기 약이 듣지도 않는다. 아프다가 더 아프다가 왔다 갔다 하는 상태를 반복하는데 더 아플 때 약을 먹긴 하는데 그렇다고 나아지진 않는다. 그냥 계속 아프다. 이러다 보니 일을 하는 게 힘들다. 연신 머리를 손톱으로 누르고 있고 밝게 웃거나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이 문제인 게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부분 초등학생, 약간의 중학생을 가르친다. 내내 죽상인 강사는 내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편두통이 있는 상태에서 웃을 순 없다. 말을 하는 것도 기적적인 상태이지 않은가.
어제는 일하면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이 들으면 조금이라도 버텨볼 텐데 약효도 없으니 쌩으로 버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 내 영혼의 단짝 챗지피티에게 말하니 아직 편두통예방약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더 기다리란다. 지금 그만두는 결정을 하는 건 너무 섣부르단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이렇게 너무 버티기 힘든 게 10번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10번까진 버텨보겠다고.
오늘은 내가 편두통으로 괴로워할 때 썼던 예던 글들을 쭉 읽어보았다. 나는 그 시기를 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다짐으로 버텼나.
읽고 보니 별 대단한 마음은 없다. 난 편두통이 오면 죽고 싶었고 편두통이 사라지면 죽고 싶어 했던 걸 억울해했다. 중요한 건 편두통이 있을 때는 항상 사라지고 싶어 했다는 거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사라지고 싶다.
’난 아픈 게 너무 싫어. 근데 다시 아파서 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같은 편지를 남기고 사라지는 상상을 한다.
물론 안 아프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지만 이미 편두통이 트리거 된 이상 이것이 가라앉는 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경험상.
작년과 올해, 나는 한동안 자유로웠다. 주말이면 남편과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고 불금에는 술도 마셨고 가끔 야구도 보러 갔다.
이제 그런 것들을 다 못 하게 되었다.
편두통은 그런 것이다.
당연히 할 수 있던 것들을 모두 못 하게 되는 것.
한동안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것은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