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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Mar 18. 2019

러브, 데스 + 로봇

우리는 왜 이런 SF를 못 만들까?

이번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선보인 <러브, 데스 + 로봇>이 세간의 화제입니다.

18편의 단편 SF 애니메이션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작품인데요, 벌써 입소문을 통해서 국내 SF 주소비층 인 중장년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의 <매트릭스>에 필적한다는 찬사까지 받으면서요.


<러, 데+로>는 지금 세계 SF의 흐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드코어 SF물의 대명사인 <데드풀> 팀 밀러,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에일리언 3>의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 결과, <러, 데+로>에서는 현대 CG 기술과 자유로운 발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처럼 생생한 영상은 모션 캡처 기술을 즐겨 사용하는 데이비드 핀처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피가 튀기고, 뼈가 으스러지는 실감 나는 묘사 역시도 현대 SF 구독층의 트렌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모든 에피소드가 마치 단편 SF소설처럼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만약 그걸 텍스트로 본다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최신 SF 트렌드는 기획 단계부터 애니메이션과 같은 영상화를 목표로 이뤄집니다. 글자로는 부족한 전달력을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미리 영상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저런 스토리를 단편 소설로 접한다면 독자가 느끼기엔 밋밋한 내용으로 여길 겁니다.



우리나라 SF 소설계의 현실을 돌이켜 봅시다. 최근에 한국형 SF의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정작 내용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어요. 진부한 스토리의 단편 소설 대량 양산, 아이디어만 따지는 풍토, 여기에 더해서 얼토당토않은 문학적 클리셰의 남발까지...


해외 SF는 <러, 데+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소설의 영역을 벗어나서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SF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저는 한 가지를 확신합니다. 우리나라 SF는 점차 망해가는 문학계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됩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좋습니다.


빈곤한 상상력의 한국 SF 웹툰,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한국 SF 소설. 방황을 하기 이전에 우리나라 SF 주소비층이 여전히 건재하고, <러, 데+로>와 같은 해외 SF 작품에 열광하는 현실을 직시합시다. 비교가 돼도 너무 심한데 신토불이를 주장하면 절대 안 먹힙니다.


저는 우리나라 SF 작가, 평론가(겸 심사위원을 자칭하시는 분들), 독자층이 모두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떤 한국 SF 작품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작은 것에 몰두해서 큰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SF는 텍스트의 한계를 벗어나서 인류 모두가 나눌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의 소통 언어입니다.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기존 문학이 결코 가지지 못한 이런 장점을 직시했으면 합니다.



- 엘랑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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