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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Oct 19. 2018

퍼스트맨과 인터스텔라가 다른 점

우주를 다룬 영화를 보는 색다른 시각

안녕하세요. 영화 평론가 모드로 돌변한 엘랑입니다. 저는 전문 영화 평론가는 아니지만, 우주 영화만큼은 평론해 왔고, <그래비티>나 <마션>의 영화평으로는 조회수로만 따지면 여느 평론가보다 더 많이 읽혔을 겁니다.


국내에 훌륭한 영화 평론가들도 있습니다만, 우주 과학만큼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는지 제대로 된 영화평이 매우 드뭅니다. 대표적 케이스가 <인터스텔라>였죠. 뭐랄까, 좋은 영화는 맞긴 한데, 평가는 조금 빗나갔다고 봅니다. 우주 SF영화 삼대장이라는 <그래비티-인터스텔라-마션>의 전 세계, 북미, 한국 흥행실적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 국가별 취향도 확실히 다릅니다.


2013년, 그래비티 (워너 브라더스)

수많은 우주 덕후들의 덕심을 자극했던 <그래비티>는 그때까지 여느 SF영화와도 다른 리얼리티 우주 모습을 인류에게 보여줬습니다. 무려 1억 3천만 달러의 예산 중에 대부분이 특수 효과 촬영에 쓰였지요. 그런데 영화 시나리오적 관점에서 굉장히 허술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도 수업받을 때 이 영화의 플롯 라인 분석에 애를 먹었고, 선생님도 예외적인 영화라 했으니까요. 오로지 시각 효과로 짱 먹은 영화입니다.


흥행 성적은 전 세계에서 고르게 히트 쳐서 7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습니다만, 리얼리티를 표방했으면서 정작 실제 과학기술 원리를 크게 왜곡한 점 때문에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 우주는 그다지 박진감 넘치지도, 아름답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극 중 흥미 유발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겠죠.


2014년, 인터스텔라 (파라마운트 픽쳐스)

<인터스텔라>는 제작비 1억 6천만 달러, 흥행 성적은 6억 6천만 달러였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북미 시장에선 조금 미약했고, 전 세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최대 흥행국이었습니다. (관객 비율 대비)

이런 기현상을 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정작 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저조한데, 갑자기 고등 물리학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한국적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영화 상영 당시에 과학기술에 관해서 빈약했던 국내 영화 평론가 풀에서는 완전히 틀린 어조로 찬양 일색이었죠. 이유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인터스텔라>는 그 자체로 괜찮은 영화일지는 모르지만, 과학적 허구가 너무 심각해서 유사과학으로 봐야 하는 건지, 판타지로 여겨야 할지 저도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뭐 픽션적 흥미 유발이라 치면 괜찮지만요. 문제는 그런 허구가 실제 사실처럼 오용돼서 확산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역대로 하드코어틱 SF 영화치곤 최대의 흥행 성적을 국내에서 올렸습니다.


2015년, 마션 (20세기 폭스)

<마션>은 하드코어 우주 덕후인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앞서 두 영화보다 훨씬 치밀한 과학적 사실 묘사, 그리고 픽션을 적절히 조합해서 큰 인기를 끌었죠. 재밌는 사실은 마션의 흥행 성적이 북미에서 최고였고, 한국에선 그저 그랬다는 겁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컸다고 봅니다.

제작비는 1억 1천만 달러 정도였고, 전 세계 흥행 성적은 6억 3천만 달러인데요... 삼대장 영화 중에서 국내 흥행 실적이 가장 낮았던 영화입니다. 만약 <인터스텔라>의 국내 수익을 제외하면 <마션>이 오히려 전 세계 흥행 실적이 더 높았을 정도니까요.


그래비티-인터스텔라-마션에 대한 비교 평론만 해도 한 나절이 갑니다. 우리나라 SF시장의 특수성이 고스란히 반영돼서 좋은 표본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작가들 대상으로 이거 강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 SF가 살아남으려면 시장 특수성이 어떠한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예입니다.


2018년, 퍼스트맨 (유니버셜 픽쳐스)

마지막으로 문제작 <퍼스트 맨>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비가 달랑 6천만 달러 들어갔습니다. 물가 상승률 고려해도 기존 삼대장의 절반 수준이지요. 그런데 영화제에서 관심을 끌기론 역대 최고입니다. 북미에서 개봉 직전부터 논란이 있었고, 흥행 실적도 평타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랍니다.


나오기 전부터 관심을 가져서 비교적 관련 사항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직접 보니까 한 가지는 명확한 영화입니다. "이거 호불호가 엄청 갈리겠다."

특히, 불호 측면에서는 집중포화를 맞을 가능성이 커 보였습니다. 왜냐면 인류의 비지성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인터스텔라> 당시에도 영화의 재미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크게 결집하지 못했고, 오히려 우주의 신비 찬양론이 겹치면서 붐업했죠.

반대로 <퍼스트맨>은 국내의 묘한 사정을 고려하면 비판이 크리란 게 자명한 영화입니다. 바로 아폴로 달착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성조기 게양, 아메리카 퍼스트만 조금 더 내세운 국뽕 영화였다면 지금쯤 북미 시장에서 날아갔을 겁니다. 미국 특성상 위대한 영웅 스토리는 대박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량> 쯤?


저는 개개인의 호불호 따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무리 걸작 영화도 안 맞는 분들에겐 별로니까요. 하지만 여론의 흐름, 평론의 특성은 조금 다릅니다. 그런 것이 결국 흥행을 좌우하기도 하니까요.

모든 영화는 몰입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몰입감은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는 분야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 분야를 다루면 누구나 몰입하고, 모르거나 거부하는 내용이 있으면 그냥 졸리게 됩니다.


제가 <인터스텔라> 보면서 졸았던 이유는 하드코어 덕후 입장에서 별로였기 때문이고, 그런 영화는 수십 년 뒤에 잊히게 됩니다. SF 사상 위대한 걸작이란 영화는 대부분 당대의 하드코어 덕후가 극찬한 영화들이지요. 대표적으로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당시엔 일반 관객이 다 졸았다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반대로 <퍼스트맨>은 하드코어 덕후 입장에선 살면서 보기 힘든 명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고 싶었고, 내 머릿속에 그렸던 진짜 우주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으니까. 언제 우주 가볼 수 있겠습니까. 대리만족이지.

그런 덕후 요소를 제외하면 일반 관객 눈에는 이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심란한 핸드 헬드 촬영, 다큐멘터리, 뻔한 아폴로 스토리, 감동이 없는...

그렇다면 마블 영화 추천드립니다. 가오갤은 볼거리로는 최고였고, 어벤저스 세계관은 판타지를 SF로 잘 포장한 케이스라서 대 장르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역대 최고 흥행작들은 모두 판타지거든요. 진짜 SF는 마이너 장르입니다. 유일하게 <아바타>는 하드코어 SF에 속한다는 사실만 빼면요. (다들 이거 알면 놀라더라고요. 아바타는 굉장히 사실에 치밀한 SF영화입니다.)


퍼스트맨의 라이언 고슬링 (유니버셜 픽쳐스)

그런데 <퍼스트맨>은 SF영화가 아닙니다.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니까요. 다큐멘터리 성격이 보이는 것이 당연한데, 그걸 다큐멘터리라고 꼬집으면 어쩝니까. <포레스트 검프> 같은 픽션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죠.

그럼에도 닐 암스트롱의 실제 생애가 워낙 드라마틱해서 그걸 그대로 묘사만 해도 영화로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여태껏 영화화하지 않았기에 유니크하고요.


어떤 분은 다큐 영화를 왜 SF 삼대장에 또 비교하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기존 SF 삼대장이 퍼스트맨과 교집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큐와 픽션이 교집합이 된다는 게 웃기죠?

우주의 신비, 사실감, 감동의 원조가 바로 아폴로 달착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드코어 우주 SF 스토리의 모든 시작,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이 지점에 있습니다. 흔히 이런 것은 훗날 명작을 나눌 때 기준점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개봉과 함께 인터넷을 보면 상상 이상의 비판론이 고개를 들더군요. 그냥 노잼이다, 생각보다 별로였다~ 수준이면 좋을 평범한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평점 테러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을 정도로 이슈입니다. 바로 유사과학의 범람입니다. (또는 극보수주의)

왜 해외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극찬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모두 하드코어 덕후들도 아닐 텐데, 어떤 것을 봤을까요? 그리고 직접 본 후에 알았습니다. 영화 한 편을 너무 어렵게 보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은 거의 사실입니다. 과학적, 역사적 사실에서 흠잡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마션에서 100개, 인터스텔라에서 200개, 그래비티에서 300개 옥에 티를 찾았지만, 이 영화에선 한 개도 못 찾았습니다."라고 할 뿐입니다.


달과 지구 교신 시간의 물리적 차이 이야기하신다면... 흠은 흠이겠죠. 근데 영화 진행상 그게 거론할 부분은 아닌 거 같은데요? 1초와 3초를 압축한 차이에 불과하니까 옥에 티가 아니라, 러닝 타임의 문제입니다.

스토리 라인의 재미, 몰입도, 촬영 기법, CG효과 이런 거 따지신다면... 제작비치곤 괜찮았고, 다른 영화에서 절대 못 볼 볼거리도 있었다는 것은 기억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촬영기법, 영상 보여줄 영화는 없을 테니까요. 가족애, 억지 설정을 말한다면... 이게 리얼이었던 것을 탓해야겠죠. 만원 내고 실제 우주를 체험할 기회는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허구를 교육 목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역사-과학 교육 삼아서 이런 영화가 백배 낫다고 봅니다. 볼거리 찾으면 호불호 확실히 갈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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