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과학의 대립,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예송논쟁
필자는 과학 작가다. 작가면 작가지, 무슨 과학 작가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엄연히 과학 작가다. 수없이 많은 문학 작가와는 근본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고민 끝에 붙인 명칭이다. 단, 글자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이런 의견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는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하고, 문학은 외면한다. 순문학의 위기,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이공계만 우대받고, 문과 출신은 천대받는 현실..." 과연 사실일까?
필자의 경험으로 보자면 위에 열거한 주장은 상당 부분 거짓이다. 우리나라는 이씨 조선왕조 시대로부터 대대로 문과를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가 여전하다. 이는 정부 부처의 각종 정책, 그리고 정책 당국자의 성향만 봐도 확연하다. 수치까지 거론하긴 창피하지만, 직접 정부 정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접해보니 그렇더라.
얼마 전에 쓰고 있는 책 원고를 가지고 '출판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출간지원사업에 신청했었다. 과거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읽어봤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분야별로 보면 과학 도서 부분의 신청작이 적어서 아쉽다."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절대적 숫자면에선 적었지만 전체 선정작의 비율로 보면 대부분 순문학, 내지는 트렌드 문학의 압도적 강세였다. 과학도서는 애당초 심사위원들 눈에 들지도 못할 텐데 무슨 사탕발림이던가? 문과의 눈에서 바라본 과학 도서는 과연 어떻게 써야 정답이 될까?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과 근대 문학의 어머니인 괴테의 논쟁은 유명하다. 모든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뉴턴은 색을 '광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반면에 괴테는 '색채론'으로 이러한 흐름에 저항했던 것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어찌 보면 둘 다 정답은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뉴턴은 처음부터 인문학을 비난하기 위해 광학을 내놓은 게 아니다. 그저 인간의 본성이란 테두리에 갇혀 우주를 바라보니 뭔가 어색했고, 우리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공식과 분류, 수치화를 통해서 밝혀낸 이론일 뿐이다. 반면에 괴테의 주장은 처음부터 의도가 명확했다. 인간성이 나날이 과학에 침범당한다고 생각해서 지켜내려 했던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 해본다. 만약 뉴턴이 캔버스에 화려한 색채의 그림으로 만유인력을 설명하거나, 괴테가 샤를로테를 향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수치로 나타내려고 애쓴다면 어떻게 될까? 아쉽지만 신은 공평해서 어떤 천재에게도 모든 것을 주진 않았다. 특히나 문학성과 과학성은 그렇다.
인류 문명의 시작으로 되돌아 가보자. 과학과 문학 중에서 어떤 게 먼저 시작됐을까?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과학이 먼저다. 인간은 불의 사용법을 발견하면서부터 문명을 이뤄왔다.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최초로 사용했으니 무려 수십만 년에서 백만 년 전에 과학이 태동한 셈이다. 그럼 문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문자 이전에 동굴벽화(3~10만 년 전 추정), 픽토그라피를 거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문자가 출현한 것은 고작 5천 년 전에 불과하다. 그런 문자와 함께 문학(길가매쉬의 서사시)이 태동했고, 짧은 시간만에 인류의 많은 영역을 지배해왔다.
근대 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시작되고, 그 여파가 동양에까지 이르러 곤욕을 치렀던 것이 얼마 전이다. 서구 문명은 근본적으로 과학 본위의 문명이다 보니 차츰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인문학 열풍'이 유행처럼 번졌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트렌드에 발맞춰 '인문학 재발견'을 외쳤지만, 이미 인문학이 주류인 사회에서 또다시 무슨 재발견이람? 오히려 한국 사회에는 '과학의 재발견, 재인식'이 필요한 지경이다. 정치인, 주요 공직자 대부분이 변호사, 또는 문과 출신인 사회에서 문과 천대를 외치는 것은 조금 예의가 아닌 듯싶다. 문단 권력이란 이야긴 종종 들려도, 과학기술 권력이란 말을 들어본 이가 있던가?
아침부터 횡설수설하며 글 쓰는 이유는 이렇다. 새벽에 트위터로 이런 글을 보았다.
"SF를 너무 검증만 하고, 정확한지 여부만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동의한다. 하나하나 꼬집어서 비판하는 건 예의에 맞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SF는 원래 이과생의 유일한 문학 분야다. 근대 SF의 창시자는 두 명이다. 쥘 베른은 하드 SF라 일컫는 정통 SF 장르를 개척했고, 웰스는 거대 장르인 판타지와 SF를 섞어서 사이언스 판타지를 창시했다. 현대에 와서는 후자의 시장 영역이 압도적이지만, 여전히 정통 SF를 추구하는 이들은 쥘 베른을 꼽는다. 이것은 뉴턴과 괴테의 색깔 논쟁과도 흡사하다. 소설을 과학적으로 쓰느냐, 아니면 인간의 눈으로 본 그대로 쓰느냐...
문과여, 다른 모든 장르는 다 가져가라. 단지 SF마저도 괴테가 미적분하는 식으로 곡해하지 말라. 왜 많은 이들이 국내 SF작품을 볼 때마다 하나하나 죄다 검증이란 잣대로 산산조각 내는지 아는가? 문학은 우리나라에서 과학에 비해 대중 영역에선 압도적인 분야다. 과학적 시각으로 만족하고 알릴 수 있는 작품은 나올 여건이 안 되는 사회다. 최후의 저항을 텃세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이주해서 원주민을 소수라고 몰아낸 것과 똑같지 않은가?
글자는 문학의 것만은 아니다. 훈민정음처럼 과학적으로 만든 문자가 훨씬 유용하지 않던가? 둘은 원래 하나이면서, 대척점에 있으니 가끔은 조화를 살려보면 어떨까?
과학 장르 소설을 심사하는데 막상 가서 보면 판타지, 미스터리 작가가 앉아 있더라. 처음부터 '과학' 타이틀을 빼던지. 마치 동네 피아노 경연대회에 체육관 관장님들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분들은 해당 분야에서 나름 뛰어난 작가임에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판타지 문학은 초강세 분야다. 주변을 봐도 필력 넘치고 스토리 가득한 작가들이 로맨스, 판타지 분야에 잔뜩 포진해있다. 그런데 SF를 가지고 그런 시장에 도전하면 먹힐까? 절대 안 먹힌다. 국내 SF는 처음부터 별개의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만약 나 보고도 먹고살기 위해 글을 쓰라면 당연히 SF는 안 쓴다. SF는 스스로의 제약 때문에 판타지와 견줄 때 경쟁력이 떨어진다. 생산성 낮지, 흥행요소 적지...
내가 자꾸 SF의 고증,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SF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구조에선 차별화가 먼저다. 외국처럼 SF가 대중화에 성공했다면 모를까, 피어나는 단계에서 판타지와 구분이 안되면 당연히 경쟁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