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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Nov 09. 2018

하늘에서 내려온 공포의 마왕 (下)

1장. 지구에서 달까지

탄도미사일의 확산


소련은 독일에서 입수한 V-2 로켓과 기술을 응용해서 카피 로켓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틸알코올/액체산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V-2 로켓은 연료의 보관과 주입, 이동에 난점이 있어서 상온에서 저장과 보관이 용이한 UDMH(비대칭 디메틸 하이드라진)/RFNA(적연질산)를 연료로 하는 스커드(Scud) 미사일을 개발했다. 스커드와 V-2는 사거리가 비슷하다.


“국내에는 스커드 미사일이 발사 직전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30분가량 걸린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스커드는 기지에서 미리 연료를 주입한 후에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미사일을 기립시키고 5분 내로 발사한 후에 도주할 수 있다. UDMH는 공기 중에 유출되면 인체에 유독한 물질이고, 적연질산은 강한 산성이라서 일반 금속을 부식시킨다. 하지만 상온에서는 물과 비슷한 특성이 있어서 액체산소보다 보관이 매우 간편하므로 연료 주입 후 몇 개월 동안 대기가 가능하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여러 나라가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만들었지만, 실전에서 가장 널리 쓰인 것은 스커드 미사일이다. 스커드는 변형 모델까지 합치면 1만 발 넘게 제작되었다.

1981년에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탄도미사일이 대량 사용된 두 번째 전쟁이었다. 이란은 원래 중동의 최대 군사 강국이었으나 종교혁명으로 팔레비 왕가가 축출된 이후에 왕정에 충성하던 장교 다수가 숙청되고 정규군은 와해되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한 이란 혁명의 파급효과를 우려한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으로 이라크는 이란을 기습 침공하여 중동의 맹주가 되려 했다.

이란-이라크전 초기에는 대규모 기갑부대를 앞세운 이라크군이 이란의 서부지역 주요 도시들을 손쉽게 점령했고, 이에 단기전으로 이라크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순교를 각오한 이란 민병대가 이라크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숙청되었던 이란군 장교들이 다수 현역에 복귀하면서 우세한 공군력을 바탕으로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이란의 인구와 국력은 이라크의 두 배가 넘는다. 풍부한 지원 능력을 바탕으로 이란군과 시민 지원병들은 이라크군을 물리쳤고, 잃어버린 도시들을 탈환한 뒤에는 오히려 이라크 영내로 역공을 가했다. 이라크가 궁지에 몰리자 이번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과 함께 소련까지도 이라크에 많은 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모두 이슬람 원리주의의 이란이 중동을 장악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탓이다.

전투가 고착상태에 빠져들자 마치 1차 세계대전처럼 참호전과 독가스전이 개시되었다. 막대한 무기 지원으로 기갑전력이 우세한 이라크와 많은 병력을 보유한 이란은 서로 끝없는 소모전에 돌입하여 피아간 엄청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라크군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 (Image: Deviantart / Darkcloud013)


이라크는 소련에서 스커드B 미사일을 도입했고, 1982년 말부터 약 100여 발을 이란의 도시들로 발사했다. 하지만 스커드B는 사거리가 300km에 불과해서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제공권은 이란 쪽이 우세했다. 혁명 직전에 도입한 F-14를 비롯하여 최신 전투기를 다수 보유했었고, 영토가 넓어서 이라크 전투기들이 이란 깊숙이 작전을 펼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무기 금수 조치를 당했던 이란은 주로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조달했다. 1985년에는 북한이 막 개발을 끝낸 화성 5호 미사일을 100여 발 수입하기도 했다. 화성 5호는 사거리 300km의 스커드B 미사일 카피판으로 대당 수입 가격은 300만 불 정도로 추정된다.

이라크의 공세에 맞서서 이란은 바그다드를 비롯한 도시들에 약 60여 발의 미사일 공격을 펼쳤다. 이에 이라크는 소련에서 추가로 스커드B 300여 발을 수입했고, 서방 기술진의 도움으로 일부를 개조하여 사거리 1,000km에 이르는 알 후세인 미사일을 만들어서 테헤란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결국, 계속된 전쟁에 부담을 느낀 이라크가 먼저 휴전을 제의하자 오랜 전쟁에 지친 이란도 화답하면서 종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이란 종교지도자인 호메이니는 “내가 살아있는 한 전쟁은 지속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들을 되찾기 전에는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

이라크군은 1988년 초에 대규모 공세를 펼치면서 테헤란을 향해 무차별 탄도미사일 폭격을 가했다. 이에 민심이 크게 동요하자 이란 지도부는 어쩔 수 없이 휴전에 응하게 되었다.

전쟁 동안에 이란은 약 60여 발, 이라크는 360여 발의 스커드B, 카피판, 개조판을 서로 발사했다. 이란은 무기 금수 조치로 어쩔 수 없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인해전술을 펼쳤기에 인명피해가 더 컸다. 공식적으로 18만 명의 이란 군인,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5만 명 이상의 군인과 자원병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의 주요 도시들은 이란에서 쏜 스커드 미사일의 사거리에 들어갔어도 발사 횟수가 적어서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 반면에 이라크 미사일은 전쟁 초반에 전선 가까운 도시만 제한적인 타격을 입혔으나, 알 후세인 미사일이 개발되면서 1988년에 100여 발이 테헤란을 타격했다. 수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 발생과 함께 시민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자 완강했던 호메이니조차 두 손 들게 되어 전쟁이 끝났다.



한반도의 군사·지리적 상황


우리나라의 상황을 한 번 살펴보자. 수도권 집중화 때문에 북한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에 수많은 시민이 노출되어있다.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수도권 일대에 막대한 민간인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이유다.

이란-이라크의 예와 달리 한반도에서는 서울이 너무 휴전선과 가깝다. 굳이 탄도미사일이 아니더라도 전략적 공격이 지리적으로 쉬운 편이라 우리에게 불리하다. 반면에 제공권에서는 한미연합군의 전력이 압도적이다. 북한은 항공기로 공습하긴 어려우니 필연적으로 장거리포와 장거리 방사포로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 포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먼저 상대방의 군사력부터 꺾는 것이 최우선이다. 장기전으로 가야만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 폭격의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북한의 장사정포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한미연합군의 전력을 상대로 투사될 것이다. 몽땅 민간포격을 한다는 식의 가정은 어처구니가 없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일부만 민간포격에 나설 것이다.

물론 시가지에 포탄이 떨어지면 민간인 사상자가 많이 발생해서 큰 심리적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한반도 전면전을 가정하면 이러한 피해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사거리 300~500km의 스커드 미사일 400~600여 기다. 노동 미사일은 수량이 적고, 사거리도 1,000km가 넘어가서 굳이 남쪽으로 쏘기엔 다소 부적절하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한반도 전역이 전장이 된다는 말이 있다. 북한의 비정규전 부대가 침투해서 전국적으로 파괴 활동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비정규전 부대는 기본적으로 경무장이다. 수백kg의 폭약을 휴대하고 다니진 않는다. 중화기조차 휴대하기 힘들다.

스커드 미사일은 한 발에 1톤에 육박하는 고폭탄이 장착된다. 생각해보라. 수도권 북부는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로 포격하고, 수도권 이남과 대전, 대구, 전주, 광주, 부산, 울산, 포항에는 도시마다 몇 발, 또는 십여 발의 스커드 미사일이 날아든다. 그런 상황이 되면 시민들이 받는 공포와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 있으면서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을 향해 미사일 세례가 퍼붓기 시작하면 오히려 먼저 전쟁 종식을 외치며 누군가를 비난할지 모른다.

북한은 핵무기를 소형화해서 미사일로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전면전 발발 시 한국으로 날아오는 스커드에는 핵무기가 탑재됐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에 그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탄도미사일은 핵무기 운반수단으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포나 방사포는 탄두가 작아서 핵폭탄을 날리기 어렵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은 수백kg에서 수 톤 단위의 탄두를 나른다.

이러한 여건에서 북한과는 군사적 대결보다는 평화적 교섭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고, 다행스럽게도 남북 평화 분위기가 찾아온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훨씬 값진 일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래식 병기


V-2 미사일 공격으로 희생당한 안트워프 사람들


탄도미사일을 핵무기 운반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재래식 고폭탄만 탑재해도 위협적이다. 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특성 때문에 제공권을 잃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도시를 효과적으로 전략 폭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탄도미사일이 재래식 전력으로 사용될 때 갖는 강점이다.

미국은 재래식 탄도미사일을 실전에서 사용하진 않는다. 대신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한 종류만 해도 지금껏 4천 발 이상을 생산해서 무려 2천 발 넘게 실전에 사용했고, 현재도 천여 발을 실전에 대비하여 항시 비축 중이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수백kg의 재래식 탄두나 핵탄두를 탑재하고 1천 km 넘게 날아가서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1천 km 사거리 탄도미사일보다 1천 km 사거리의 순항미사일이 더 만들기가 어렵다. 하지만 속도가 느린 대신에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 탄도미사일의 명중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가격은 순항미사일이 조금 싸게 먹힌다. 미국이 탄도미사일 대신에 순항미사일을 다량 사용하는 이유는 비용과 정확도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수백 발의 탄도미사일을 쏴서 개전 초기에 이라크를 제압했더라면 민간인 사상자가 엄청났을 것이다. 탄도미사일은 파괴력이 더 크고, 정확도는 낮아서 전략 폭격에나 어울린다. 반면에 순항미사일은 느려서 대공포에 격추될 가능성은 있어도 정확하게 주요 군사시설만 골라서 파괴할 수 있다. 파괴력도 너무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다른 무기에 비하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셈이다.

국제 정세를 보면 강대국보다 열세인 일부 국가들이 전력 격차를 비대칭 무기로 극복하고자 탄도미사일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한마디로 그것 자체가 전략무기다. 여태껏 탄도미사일이 사용된 전쟁에서는 모두 전략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지, 전술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전례가 없다. 최근에 일부 탄도미사일은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갖춰서 전술적인 용도로 적의 군사목표를 제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략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되는 편이다.

탄도미사일 요격은 90년대 걸프전에서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처음 선보였다. 그런데 정확했냐? 아니다. 패트리어트의 스커드 요격률은 사실 처참했다. 다만 탄도미사일이 방어 불가의 무기가 아니라는 가능성만 보여준 셈이다. 지금도 최신 요격미사일이 얼마나 정확히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못했다.

게다가 요격 무기는 가격이 매우 비싸다. 탄도미사일 한 발을 막기 위해 몇 배 더 비싼 요격미사일을 여러 발 쏴야 한다. 표적에 핵이 탑재되었는지, 재래식 탄두가 탑재되었는지 분간하지도 못한다. 핵 위협이 가시화되면 멍텅구리 탄도미사일을 향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수십 발의 요격미사일이 동시에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할 때 탄도미사일은 재래식 전쟁에서조차 후방을 위협하는 전략무기로 사용될 수 있고, 시민들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그리고 살상 대상은 당연히 무고한 민간인이다. 전장에서 대치하고 있는 군인끼리는 그보다 훨씬 간단한 포탄과 총탄으로도 충분히 서로 죽일 수 있다. 그러나 후방에 대한 전략적 공격 수단으로 탄도미사일만한 것이 없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해서 전투기나 폭격기로 폭탄을 실어 나르기 전까지는.


“V-2 로켓의 원래 명칭은 A4 로켓이었다. 그런데 히틀러가 이름을 V로 바꿨다. 승리를 의미하는 V가 아니라 보복(Vergeltungs)을 뜻하는 단어의 첫 글자다. 그게 탄도미사일의 숙명인 것이다. 인간의 광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기다.”




로켓에 관한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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