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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랑 Nov 13. 2018

21세기의 콜럼버스

칼 세이건은 과연 절대적 진리를 말했는가?

우리나라는 GDP 대비 과학기술 R&D 투자비율로는 세계 1위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미미한 편이다. 최근에 정부 차원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매년 큰 폭의 예산 증액를 약속하고 있지만, 내재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의 노벨과학상 만들기 프로젝트를 꿈꾸는 기관으로는 IBS(기초과학연구원)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에 대덕연구단지 내의 IBS 본원 개원식에서 있었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당시 과기정통부 장관이 개원 기념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하필 같은 날 열렸던 마곡 LG 사이언스파크 개소식에 대통령이 참관하는 바람에 장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모두 따라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제1차관이 대신 IBS 개원식에 참석했고, 청중 사이에선 "장관이 와야지!"라는 고함까지 나올 정도로 다소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오만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실제로 IBS 관련된 업무의 총괄 책임자는 바로 제1차관이다. 그리고 정부 요인 일정상 꼬여버린 것을 감안한 듯, 같은 날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리던 '과학의 날' 기념식에 참석차 대전으로 내려왔던 국무총리가 예정에도 없이 IBS에 방문해서 기념식수를 했다. 정부에서도 IBS를 가볍게 보진 않았다는 뜻이다.

얼마 뒤에 IBS 소속 스타 과학자의 배임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나라에는 기초과학의 미래가 없구나.' 싶었다.

진짜 고생하는 수많은 과학도들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 * *


우리나라 이공계 분야 중에서 가장 돈을 못 벌 것 같은 곳이 어디일까? 다른 말로 말하면 일자리가 제일 없는 전공은 무엇일까?

나는 물리학과 천문학을 꼽겠다. 둘 다 기초과학의 끝판왕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수학이야 주류 교육 분야에 속하기에 관련 일자리가 어느 정도 있지만, 물리학과 천문학은 배워봤자 수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얼마 안 되고, 응용과학이나 공학이 아니라서 서울대 박사 출신도 일자리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학사나 석사는 말할 것도 없다.

우주과학을 다루는 양대 연구기관인 항우연과 천문연만 직접 가봐도 흥하고 있는 집과 썰렁한 집의 차이를 금세 느낄 수 있다. 요즘 국내에서 ICT를 제외하면 가장 투자가 왕성한 분야가 원자력과 우주항공 분야다. 오죽하면 ETRI 관계자도 원자력연구소와 항우연에 투자가 쏠려서 푸대접받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니까.


그런데 조금만 바꿔서 티브이와 서점을 둘러보면 온통 천체물리학, 우주생물학과 양자역학이 붐을 이루고 있다. 현실 세계와 다른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서점에는 자랑스레 『코스모스』를 구매하는 독자들과 『양자역학』정도는 읽어줘야 현대 교양인이라 생각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 * *


칼 세이건 박사는 인류의 관심을 우주로 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의 명저 『코스모스』는 4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우주과학의 바이블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세게에서 절대적 진리라는 것은 절대 없다는 점이다.


15세기에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신대륙을 발견했다. 당시 과학기술로도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동기였다. 콜럼버스는 아랍 세력에 가로막힌 지중해 항로를 우회해서 인도로 가는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간단한 논리를 내세워 모험에 나섰다. 물론 지구의 크기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계산한 덕분에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지만.

원래 콜럼버스가 약속했던 모험의 대가는 막대한 황금과 향신료였다. 그러나 서인도 제도에 도착해서 아무리 뒤져봤자 별다른 귀금속이나 향신료를 찾지 못했다. 반면에 콜럼버스의 후예들은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냈다. 바로 노예사냥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나서 유럽의 약탈자들이 남미 원주민을 학살하며 금광을 찾아 혈안이 되었다.


『코스모스』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우주 곳곳에 생명이 넘쳐날 것처럼 언급했던 영향으로 SETI계획과 케플러 미션 등 여러 외계 지적 생명체 찾기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결과는 어떠한가?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한동안 무시됐던 과거의 일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지동설 당시에도 천동설에 오류가 있다는 것은 과학계에 널리 알려졌지만, 기존 정설이었던 천동설을 부인하고 지동설로 돌아서기엔 큰 난관이 있었다.

결국 뉴턴의 고전역학 이론이 발표되면서 지동설이 정설이 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어도 여전히 천동설은 살아남아서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현대 인류는 천동설을 대체하는 『코스모스』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인류 평균 지성으로는 외계인이 반드시 존재했으면 하는 희망론에 근거한다. 만약 외계인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찌 될 것인가? 아마도 인류 문명의 모든 근본 토대는 처음부터 다시 의문을 갖고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 코스모스는 일부 학자들, 상술에 능한 집단에 의해 새로운 과학 바이블로 포장되어 무차별적으로 읽히고 있다. 고인이 된 칼 세이건 박사가 진정으로 원했던 일이었을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공간 내에 외계인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코스모스로 인해서 촉발된 외계인 찾기 프로젝트의 결과에 따른 그나마 논리적 추론이다. 외계인이 절대적으로 존재치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외계 고등 문명체가 존재하는 어떠한 증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하면 역으로 "외계인이 없다는 증거도 없잖나?"라고 되묻는 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 있다는 증거도 없고, 없다는 증거도 없다. 그런데 외계인이 없다는 주장은 왜 부각되지 못하는 걸까?


"이 광활한 우주에 인류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가 아니겠는가?"


칼 세이건의 이 말은 한때 진리처럼 여겨졌다.


"이 광활한 우주의 부스러기에 불과한 작은 은하계에 인류만 현존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오죽하면 케플러 미션에서 찾아낸 외계 거주 가능 행성의 숫자를 놓고 일부에선 희망찬 결과라고 떠들지만, 엄밀히 따지면 예상보다 참혹한 결과라고 말해야 한다. 왜 진실을 숨기는 걸까? 빈약한 천문학 지원 예산이 줄어들어서? 대중의 관심을 잃을까 봐?


어떤 가설에서는 현존하는 은하계 내 문명을 수십 개로 추정했으나, 최근에 이를 반박하며 그나마 숫자를 늘린 것이 고작 수천 개다. 10만 광년의 크기의 3차원 타원형에서 수천 개의 문명은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서로 만날 수 없는 엄청나게 먼 거리다.

NASA에서는 보다 못해서 인지 "현재까지 우주에 탄생한 별들은 전체의 8%에 불과해서 초기 단계다. 우리 인류가 우주적 시점으로는 초고대 문명에 속할 가능성도 크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샅샅이 찾아봐도 외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궁색한 변명이다.


* * *


양자역학은 뭐라 말하기 애매하다. 툭 까놓고 말해서 양자역학을 무슨 뇌색남 인증서 즈음으로 여기는 부류가 많은 것 같다.

필자도 양자역학, 끈이론은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결론이 안 난 학문을 놓고 예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려운 가정과 증명은 진짜 과학자들의 몫이다. 대중은 그저 결판이 난 정설을 가지고 그런 게 있구나... 하면 될 뿐이다.


한 가지 더 거론하자면, 양자역학 책을 읽었다는 대중 중에서 그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고전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조차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결국 아는 채 하기 위해서 양자역학이 적합한 대상이 되었고, 물리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 유발을 위해서 일부 전문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끈이론도 괜찮은 대상이지만, 독자의 공감과 연상 측면에서는 양자역학이 훨 낫다. 보여줄 고양이라도 있지 않은가?


* * *


오늘도 뭔가 심오한 우주의 진리를 갈구하며 많은 이들이 코스모스와 양자역학 책을 산다. 그중에서 90%에게 필요한 책은 차라리 수학책이다. 미적분을 제대로 이해하면 머릿속에 신세계가 열릴 것이고, 자녀 교육에도 써먹을 수 있다.


과학이란 비판적 지성을 뜻하기도 한다. 순응하는 지성은 '무지'라고도 일컫는다. 아무리 좋은 책도 비판적 관점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순응의 자세로 읽는다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인류가 지상을 떠나 우주로 관심을 두는 데 큰 이바지를 했다. 덕분에 많은 탐사선이 태양계를 샅샅이 살폈고, 수십 광년 너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그 결과에 이제는 순응해야 하지 않을까?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은 그 자체가 성과가 아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진화를 위한 계기였을 뿐이다. 위대한 업적은 이렇듯 의도치 않았던 결과로 얻어지기도 한다.


"코스모스는 내가 읽어본 과학책 중에서 글이 가장 아름다운 책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어찌 대단한 책이 아니란 말인가?"






* 이 글은 어느 지방 대형서점에서 과학책 코너에 갔더니 오로지 코스모스(와 그의 변형판들), 양자역학만 매대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한탄하며 쓴 것입니다. 현실의 기초과학은 고사 직전이고, 지식 세계의 과학은 이상론에 치우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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