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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Nov 29. 2023

밥상을 엎는 화끈한 S에게

난 아직도 S가 밥상을 엎었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


K와 S가 다투는 날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그중에서 안 다투면 이상한 날이 있는데 그날은 바로 '추석'이었다.

 무조건 제사를 지내야 하는 K의 집안 때문에 S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스트레스가 심해도, 하소연을 해도, 하기 싫다고 말을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는 해야 하는 집안 행사였다. 


그렇게 매년 제사로 다투던 어느 날, 쨍그랑하고 소리가 났다. 

K와 S가 다투는 날에는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항상 깨어있었고, 몰래 안방을 봤다.

그랬더니 밥상을 S가 엎어서 반찬이 방바닥에 뒹굴어 다니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어린 마음에도 '헉. 이 상황은 보통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다.

K도 S가 보통 화난 게 아닌 게 느껴졌는지 조용해졌다. 

더 큰 싸움을 만들지 않는 게 모두에게 평화를 준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분노에 휩싸인 S를 보고 그날 밤은 조용하게 지나갔다.


평상시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작게만 냈던 S가 저렇게 크게 반응했다는 것은

 모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 같다. 

그건 S가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쌓인 게 참 많고 많았겠다는 공감을 사게 됐다. 


이렇게 할 거면 짐 싸서 나가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맞았다.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 잊혀진 S의 밥상 사건 이후에 또다시 S가 분노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나는 K에게 대들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매일 대드는 반항아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왜요? 왜 그래야 하죠? "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건 따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왜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한 살 언니라고 해서 꼭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교회 언니에게 "언니라고 부르기 싫어"라고 했더니 주변 어른들이 다 당황했고, 그 언니는 "난 우주랑은 안 놀 거야 "라고 하며 크게 삐지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에는 선생님한테 PMP를 뺏겨서 억울해하다가 더 혼난 적도 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노래를 들으면 PMP를 뺏어가고, 어떨 때는 뺏어가지 않으셨고 그건 선생님의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PMP를 뺏긴 나는 왜 내가 뺏겨야 하는지에 대해 교무실에 찾아가서 물어보다가 "선생님한테 말대답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러워서 운 적도 있다.


그런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부터는 K에게 자주 대드는 일이 일어났다. 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냐고, 왜 이렇게 해야 하냐고, 왜 이렇게 하라고 하냐고 등등 나는 항상 "왜"를 붙였다.

그리고 항상 "왜"를 붙이는 나에게 K는 대들지 말라고 화를 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S는 어느 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등장했다. 그리고 내 방에 있는 모든 옷을 바닥으로 던지며 말했다. "그렇게 싸울 거면 집에서 나가. 여긴 너 집이 아니야."


그 순간, 몇 초가 안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여기서 더 대들면 정말 쫓겨난다는 것을.

조용히 알겠다고 하고 옷을 가지런히 정리한 후 눈물을 닦고 잠을 잤다.


그랬기 때문에 이 사건도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하겠어?


S는 MBTI에서 N과 S를 나누자면 100% S일 것이다. 여기서 '그럴 것이다'가 아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S는 상상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S에게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떡하죠?"라고 묻는다면, 그걸 대답하기를 거부한다. S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상상하기 싫어. 떠올리기도 싫은데."


K와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S는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K와 S가 오랜 기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며, 결혼은 대단한 과정이다.


그런 S를 보며 내가 가장 위대하고 존경하는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의지'다. 

S는 현실이 안된다고 찡찡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언제나 S는 모든 상황에서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상을 꿈꾸는 K와 달리, S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몰두했고 그건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S를 보고 자라며, 항상 내 밥값은 해야지,  내가 해야 할 일은 해내야지 라는 끈기를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브런치에 글을 올려도, 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을까?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종종 들곤 한다.

큰 성과가 없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도 꽤 마음이 괴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는 S를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 수 있는데 해야지. 하다 보면 되겠지. 그래도 해야지. 어떡하겠어? 포기할 거야?'

그렇게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브런치에 접속해 글을 쓰고 '발행'버튼을 누른다.


나에게 S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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