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벌의 리넨 셔츠로 남은 사내
오늘은 바람이 고와서 쓴다.
좋다는 말로는 아쉽다. 바람이 고왔다.
못해도 한 달에 글 한 개는 쓰자 싶어 자꾸 큰 마음먹고 쓰게 되는데
오늘은 말 그대로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마주한 바람 덕분에 가볍게 쓴다.
뜨거운 낮에 잔뜩 달궈진 온기는 품었는데 습하고 덥지는 않았다. 바람이 이렇게 보들보들할 수 있나 싶었다. 선선한 날, 좋은 소재의 스카프 하나 딱 걸쳤을 때의 그런 느낌. 바람결이 너무 좋다고 느끼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오만가지 다 느껴버리면 너무 피곤하고 예민한 노인네가 되는 거 아닌가 하다가 어릴 때보다 무던해지는 것들도 많으니 퉁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예민한 사람 입장에서 더 많이 무던히 무뎌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러면 또 그런대로 속상해할 거다. 내가 이제 이런 것도 못 느끼는구나 하면서.
하늘하늘하고 고운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이 나이 먹어서 부럽다는 건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의 영역보다는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한 발견, 자각 정도다. “왜 나는 저렇지 못할까?”보다는 “아니 저 사람은 저렇네! 좋네~“ 정도의 느낌이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도 않으면서 늘 은은한 온기를 머금은 사람, 목소리도 별로 크기 않고 조근조근 말하지만 핵심을 잘 짚어내는 사람, 그 핵심으로 상대방을 쿡 찌르지 않고 그냥 살짝 꺼내놓는 뭐 그런 느낌의 사람. 근데 쓰고 보니 그런 사람을 내가 만나본 적이 있나? 나 지금 어디 봉황, 해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 아닌가? 그냥 마르고 예쁜 애들 부러워한 걸로 너무 어그로 끄는 거 아냐?
어릴 때의 나는 이것저것 불편한 게 많았다. 꼬챙이 같은 몸을 가지지 못해서 예쁜 옷을 못 입는 것도 불편했고, 너무 많은 머리숱도 불편했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어정쩡한 키도 불편했다. 부모님도 불편했고, 공부도 어정쩡하게 잘해서 불편했고, 인생이 딱히 내 맘대로 되지도 않아 불편했다. 만사 귀찮아하는 성격상 집요함이 없어서 부러움과 불편함이 뒤틀려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내가 종종 인스타에 올리는 내 어린 시절 사진처럼 늘 마뜩지 않은 표정의 어린이였다. 진짜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진짜 여러 가지가 너무 불편했어.
불편함이 있으면 고와지기가 어렵다. 산뜻하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마음이 산뜻하지가 않으니 더 울퉁불퉁해질 수밖에. 나는 가끔씩 나의 예전을 표현할 때 울퉁불퉁했다고 말한다. 이 또한 곱다는 감각과 멀다. 매끈해야 하는데 이미 틀렸어. 그런데 진짜 웃긴 건, 20대, 30대 오매불망 기다렸던 안정적이고 매끈한 시간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나니 비로소 그런 시간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야, 안정 그딴 거 없어. 그냥 인생이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의 하루야.'하고 인정해버리고 나니 요동치던 내 인생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별일 없이 산다'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물론 나도 이제는 철이 들어 몸을 사리겠지만 요즘의 나를 가만히 돌아보면 실크 스카프까지는 아니어도 처음엔 빳빳했지만 자주 입어서 길이 좀 들어버린 리넨 셔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꼬챙이 같은 몸을 가지진 못했어도 적당히 대충 가려 입을 줄도 알고, 머리숱은 본의 아니게 젊음과 부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키는 이제 내가 큰지 작은지 관심도 없다. 부모님과는 같이 늙어버려서 서로 불편할 기력도 없고, 공부는 이제 안 하니까 괜찮...? 그리고 인생은 계속 맘대로 안될 것이니까 이것은 불편함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일기예보를 보니 당장 내일부터 낮기온 29도, 더위가 위용을 부리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아직 장마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처서매직을 기다리는 내가 좀 웃기긴 하지만 무더위를 툭하고 떨구는 처서의 시원한 바람보다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오늘의 마지막 바람이 인상적이어서 화이트 와인 한 잔 때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글을 남겨본다. 내가 뭐 어디 신춘문예 나갈 것도 아닌데 오늘처럼 그냥 가볍게 가볍게 자주 떠들어야지. 울퉁불퉁했던 내 인생도 40을 넘어가니 비로소 조금씩 고와지고 있구나.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