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어른에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는 건
아마도
아이의 말을 한 번쯤
다시 떠올렸다는 뜻일 것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표정,
지금 와서야
조금 늦게 도착한 마음.
이 글은
아이를 바꾸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아이의 말을
조금 늦게,
조금 낮은 자리에서
다시 들어보자는
하나의 제안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서툰 말로 말한다.
“몰라요.”
“하기 싫어.”
“그냥 싫어.”
그 짧은 말들 뒤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이
겹겹이 놓여 있다.
우리는 그 마음을
너무 빨리 해석했고,
너무 빨리 가르치려 했고,
너무 빨리 결론을 냈다.
그래서
아이의 말은 점점 짧아졌고,
침묵은 점점 길어졌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아이의 말은
사라진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천천히 물어주기를,
조금 덜 다그치기를,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아이의 말은
그런 어른 앞에서
다시 시작된다.
오늘
아이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괜찮다.
내일,
표정을 먼저 풀고
한 박자 늦게 물어도 된다.
아이의 말은
그 한 박자를
기다릴 줄 안다.
이 글이
아이에게 가는 답이 아니라,
어른에게 돌아오는
잠깐의 여백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