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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뤼 Aug 17. 2018

엄한 것도 적당해야...

불필요한 개 갈굼에 학을 뗐던 그때 그 시절... 

이커머스에서 근무했던 시절에 경험이다. 나의 사회생활 흑역사 중 손에 꼽히는 경험이다.

때는 일에 대한 욕심은 많았지만, 지식과 실력이 부족했던 시기였다. 회사는 체계를 만들어가던 스타트업이었고, 전반적으로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로 업무를 즐기는 직원들이 많은 곳이었다. 회사 대표의 자본이 있어 계속 커갈 회사라는 지인의 추천을 가슴에 품고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한 바로 다음 날 같은 직무를 맡은 상사는 내일부터 신혼여행을 간다며 인수인계를 하기 시작했다. 명확한 가이드가 없는 그의 설명 뒤에 이해했냐는 그의 질문에 열정에 찬 의지로 '네'를 내뱉었고, 그 뒤 줄 야근하며 만든 엉터리 문서는 폭탄으로 되돌아왔다.

그때부터 사수에게 미운털이 박힌 나는 작은 실수 하나라도 하면 회의실에 불려 가 1시간 넘게 혼나곤 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동료가 너무 심한 대우라며 팀장에게 건의까지 할 정도였다. 소수점 첫 번째 단위 숫자가 틀렸다며 이렇게 적은 이유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답변을 할 때마다 그런 이유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몰아붙였고 내 머리 곳곳은 스트레스로 빠지고 있었다. 물론 실수를 하면 지적을 받고 고쳐야 하지만, 당시 내겐 너무 힘이 들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팀장도 아닌 같은 사원급 선배에게 보고서 글자 오자로 매일 2-3시간 회의실에서 혼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어느 정도 적응을 한다고 여길 때였다. 팀장이 팀원들을 모두 부르더니, 회사에서 매출 부진을 탓하며 60%가 넘는 인원을 권고사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해주었다. 평일에 막차를 타며 야근을 했고, 주말에 출근해서 업무를 살피며 일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막으며 속상한 나의 영혼을 달랬다.

당시 회사에서 그와 내가 맡은 직무는 테스트 삼아 만들어진 불안정한 보직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회사 성장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고 한다. 퇴사할 때 나를 붙잡고 내 업무 실력을 향상하여주기 위해 필요하다 여겨 하드 트레이닝을 했었다고 말을 건넸다. 이전보다 업무 능력이 향상된 것 같고, 다른 곳에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위로를 건네 왔다. 당시 나는 바보같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혼자 남겨진 뒤 다시 한번 조용히 울었다.

사회 경험을 하다 보니 어느 덧 경력자가 되었다. 같은 업무를 하는 후배들을 만나다 보면 실력 좋은 친구도 있지만, 배움이 필요한 후배도 있다. 트라우마가 남아서인지, 나는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걱정에 차 지적할수록 오히려 업무에 방해가 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하드 트레이닝을 명목으로 갈궜던 사수를 경험 삼아 저렇게 되지는 않겠다며 마음에 새겨왔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람 이름과 얼굴이 생각나고, 꿈에라도 나오면 잠자다가 벌떡 깬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내 가슴에 칼을 꼽으며 혼을 내던 그 사람이 얼마나 잘 사는지 내심 궁금할 때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라고 나를 혼내고 싶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태로운 자기 자리를 지키려다가 보니 생긴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7년 전, 8월 16일 그 회사에 첫 출근했던 날이다. 장황하게 적었지만 이 맘 때 쯤, 그 때의 악몽이 리마인드가 된다. 그 회사에 이어 다른 회사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 옮긴 회사에 전 회사 동료를 만난 경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만큼,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업 문화가 잘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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