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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Jan 01. 2024

일을 좋아하는 것과 직업에서 살아남는 것의 차이

초등학교 장래희망 정하기 전부터 누군가 알려줬으면 하는 것

진로라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얼마나 어렵냐면 서른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세 번이나 바뀐 내 직업을 한번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스물 후반에도, 서른 후반에도 나와 내 친구들의 고민은 모두 같았다. ‘뭐 해 먹고살지? 일단 지금 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바로 이게 내 길이다!라고 생각하며 걸어가는 서른 즘의 현대인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을 정도다. 어느 누구도 길에 만족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이 일을 10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안에서도 차이는 있다. 욕을 하더라도 꾸준히 그 분야에서 계속 일하는 사람과 1년, 2년 만에 결국 그만두고 아예 카테고리를 바꿔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켜보니 어느 정도의 시간을 그 직업에서 버티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결과물을 내는 특출 난 천재성이나 엄청난 인내심이 아니더라.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해고당하지 않고 직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적성, 그리고 본인이 그 산업군의 사람들을 버텨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각각의 직업군마다 최악의 사람도 다양하고 누릴 수 있는 작은 즐거움도 다양하다. 최악이 나에게는 버틸 만 한지, 작은 즐거움들이 나에게는 꽤 유용한지가 중요하다. 일을 길게 하는데에 있어서는 어쩌면 보람이나 연봉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면, 나는 출판, 예술, 패션 총 3개의 산업군을 직업으로서 경험했고 셋 중 나에게 직무로서 맞는 건 출판, 사람으로 맞는 건 예술, 직업으로서 맞는 건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은 당연히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있고 평균 독서량은 높지만 연봉이나 미래 성장력이 최악인 분야였다. 작가를 만나고 종이책이라는 실물 형태로 결과물을 구현하는 업무는 즐거웠지만 출판하는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긴 해도 곤조가 있는 편이고, 게다가 직업으로서 만나게 되는 상급자들이 세상 제일가는 꼰대들이었다. 5년 동안 일하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상급자나 대표는 결국 만나보지 못하고 그 분야를 걸어 나왔다. 업무 자체로서는 즐거웠지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복불복, 직업 만족도로서는 최악인 것이다.


예술 쪽은 연극과 미술 쪽이었는데 ‘예술하는 사람(남자?)은 상종하지 말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이쪽이 가장 흥미롭긴 했다. 스펙트럼이 가장 넓었고 대부분 좀 또라이긴 해도 같이 일하며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예술 분야였다. 다만 직업으로서의 급여나 처우 등은 개나 줘버린 환경이었고 무엇보다 직업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수준의 자리가 수두룩한 분야라 금방 탈주한 직업군이다.


패션은 가장 최근에 가장 오래 6년 동안 일한 분야다. 출판에서 패션으로 넘어왔는데 이유는 오직 하나, 구인 사이트에 구인공고를 검색해 본 뒤 패션이 10배 이상 많은 것을 보고 이직을 결심했다. 앞으로 수많은 이직을 하게 될 테고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 자체가 많은 것이 무조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 6년을 일해보니 그 선택은 반만 맞았다. 출판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긴 하다. 내가 이 자리를 계속 원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만.

출판 쪽을 경험해서 더 비교될 수도 있지만 패션에 있는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에 물들어있을 확률이 더 높다. 당연하다. 그 분야가 이미 외모를 추대하는 사회 덕분에 성장하고 있으니. 무엇보다 대화가 재미없었다. 패션 분야 종사자들의 주된 관심은 트렌드와 패션 뉴스다. 이건 연구하기보다는 빠르게 따라가야 하는 분야다. 대부분 ’ㅇㅇ봤어?‘로 이루어지는 패션 분야의 대화에서 나는 낄 자리를 찾지 못했다. 내가 이 분야를 아직 얕게 경험해서 그럴 수 있지만 패션에 대한 감흥이나 표현도 너무 얕다. 그거 예쁘다, 저거 맘에 들더라, 이거랑 이거 같이 입는 조합 새롭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6년 만에 질려버렸다. 업무나 직업보다도 사람에게 질렸다.


이제 평생직장은 사라졌다고는 하나 직무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분야가 전혀 다른 경력을 연관 지어서 어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을 뽑을 때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 뽑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어찌어찌 몇 번 분야를 옮겨서 이직을 해왔지만 그때마다 쉽지 않았고, 이번에는 더더욱 이제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 돌아갈 분야가 보이지도 않고 패션을 계속하기엔 경력이 쌓여봤자 미래가 크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고민을 30대 중반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뭘 해 먹고살아야 할 것인가. 적당한 직업만족도에 점심시간이 즐거운 정도의 대화가 있는 직장을 과연 이번 생에는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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