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탄핵 표결이 있던 지난 토요일도 집회에 다녀왔다. 첫 번째 집회가 너무너무 추워서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토요일의 재표결이 다가올수록 한 명의 목소리라도 보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이 추운 길바닥에 나와있는데 자꾸 인스타 스토리에 속 편한 사진을 올리는 주변 지인들이 미웠는데, 너무 큰 혐오에 빠지지 않도록 이번에는 옷을 아주 단단히 껴입었다. 집회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 붙이는 핫팩과 발열 깔창을 꼭 챙기자. 미움은 추위에서 오는 것이었다. 발바닥이 따끈하니 더 이상 누군가가 미워지지는 않더라.
국회 근처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기 위해 인파에 휩쓸려 떠밀려가는데, ‘이태원참사 피해자 유족모임’ 태그가 붙은 옷과 모자를 쓴 분이 보였다. 나의 맞은편에서 그분도 떠밀려 오고 계셨는데 그 문구의 무게에 잠시 멈칫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작게 중얼중얼하며 스쳐 지나가셨다. 그분은 “모두들 천천히 가요, 천천히”라고 말하고 계셨다. 계속, 나직하게.
집회에서 탄핵 가결을 다 같이 축하하고 집에 돌아와 최근의 참사부터 기억나는 대로 되짚어 찾아봤다. 채상병 사건부터 이태원, 세월호와 광주 5.18까지 여전히 피해자의 가족들은 스스로를 구하고 있었다. 주변의 정치인, 정당, 인권 단체는 줄어들기도 많아지기도 했지만 그분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아직도 그 타령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싸우고 있었다. 책임자를 엄벌하지 못하고 사고의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길에서 여전히 답을 묻고 있었다.
우리가 집회를 참석할지 말지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참사의 현장에 우연히 없었다. 우연히 그날 이태원에 없었고, 우연히 우리가 탄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고, 우연히 오송 터미널을 맑을 때 건넜다. 하지만 이 위험한 길들은 멀리 있지 않다. 이태원에서 직원이 둘이나 사망한 업체와 일했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고문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집안을 풍비박산 낸 친척 이야기를 들었다. 멀지 않다. 지척에 있는데 간신히 길이 겹치지 않았을 뿐이다.
아직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가 살아있고 그 딸과 손자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계엄이 한 번 더 선포되었다. 집회에 나오지 않는 선택지 같은 건 없는 이들도 있다. 싸우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날이 춥든 덥든 길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들이 분명 있다. 그런 이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