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첫걸음에 관한 기억
베를린 유학시절 어느 날이었다.
그곳의 대학 생활에도 꽤 적응을 하고 방학이면 가끔 들르던 한국의 본가보다 회색의 베를린이 나의 집(home)으로 느껴지던 시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벼락치기 공부가 버거운 유학생이었던 나는 늘 그렇듯 강의가 끝나고 그날 강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일면식도 없는 동문 선배가 한인 유학생 후배들을 위해 마련했다는 저녁 식사자리에 덤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귀차니즘으로 간단한 샌드위치나 샐러드만 먹고도 잘 지내던 당시에 오랜만에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 참석할 의미가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 밥벌이 번역가로 살고 있는 나에게 그날은 일종의 터닝 포인트였다.
호스트를 자처한 선배는 한국의 국책 연구소 유럽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내 전공과 큰 연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담 없이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선배가 스치듯 던진 이야기가 귀에 꽂혔다. "연구소에서 기술 번역이 가능한 사람이 필요해 유학생 커뮤니티에 구인 글을 올렸는데 마감기한이 지나도록 왜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을까?"라는 말이었다.
어째서였을까 평소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려하던 내가 그날 밤 지원 기한도 지났다는 구인 글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용감하게 지원했다. 이미 적임자를 찾았더라도 언젠가 TO가 생기면 기꺼이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저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하는 공대생이었던 내가 말이다.
운 좋게도 지원 직후 짤막한 테스트를 통과하였고 유학생활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 연구소의 IP(Information Provider)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정기적으로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의 연방 기구에서 발행하던 각종 보고서와 연구자료를 한국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발행했던 월간지에 실릴 한 꼭지에 해당하는 글을 요약 번역,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지금과 같이 급하게 맡겨지는 짤막한 각종 영문 문서의 번역 작업도 비정기적으로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 나름 몸이 편한 아르바이트로 인식되는 번역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거래처와 클라이언트에게 나를 소개하는데 활용되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작업 이력의 첫 줄이 채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