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나 강의에서 종종 직업 통번역사로서 필수적인 자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그런 상황에맞닥뜨릴 때면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어떤 성향이나 자질을 갖고 있어서 통번역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걸까.
현직자들은 많은 자질을 손꼽을 테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결국은 귀 기울여 듣고, 눈여겨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통번역은 우선 남의 말과 글을 옮기는 일이다. 모국어(A언어)와 외국어(B언어) 능력은 말할 것도 없는 필수요건이지만 실제 필드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언어를 잘한다'는 것이 누가 언제 어떤 종류의 언어를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일종의 객관화가 가능해지는 상황들을 경험하게 된다고 할까.
때로는 언변이 좋은 연사의 말을 옮기기도 하고, 허울 좋은 말들만 가득한 문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 진의를 알기 어려운 글을 만날 때도 있고, 중언부언하는 발표자의 말에 나도 덩달아 중언부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나의 외국어 실력만으로 좋은 통번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통역을 듣는 청자나 글을 읽는 독자가 앞서 언급한 사정을 이해해줄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이 이해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게 된다. 좋은 행사, 성공적인 회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그리고 글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정확한 표현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또한, 통역과 번역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서로 상당히 다르다.
번역의 상황에서는 원문의 글쓴이(작가가 사망하거나 그와의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 기획, 편집자나 PM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에게 의도를 묻기도 하고,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장은 여러 가지 번역을 제시하며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이 또한 수차례의 억울한(?) 상황을 겪으며 깨달은 방법이다.)
반면 통역의 경우는 일종의 '빙의'를 하는 느낌이다(상호 간에 약속된 내용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역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물론 이에 반대 의견을 갖는 현직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역사는 침착한 모노톤의 중립적인 목소리로 정확한 내용만을 전달하면 된다고. 하지만 통역이 사용되는 범위는 그 상상을 초월한다. 분쟁의 상황에서 오가는 대화를 통역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전문가들의 은어가 오고 가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의도를 파악해서 말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규모가 큰 행사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말씀 자료나 대본 없이 어떠한 사전 약속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역을 주로 경험하는 본인은 모노톤의 통역이 반드시 때와 장소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결국은 통번역 작업에 착수하기에 앞서 준비 단계에서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자료를 다 읽고 정리해야 하고, 예상 혹은 상상 가능한 상황 시나리오를 만들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 투입되고 난 후에는 단순한 말이나 문장 너머에 있는 각기 다른 상황과 목적, 그 이상의 전반을 이해하려고 항상 최선의 노력한다 (나의 눈치력이 최대한 빛을 발하도록). 그래서 통번역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현장에 투입되는 것보다 훨씬 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현장의 그 누구보다 많은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예상치 못한 내용에도 문제없는 대응에 가능하다. 고고하게 수면 위를 미끄러져가는 백조가 물속에서 부단히 발을 젓듯이 모든 통번역사가 성공적인 업무를 위해 투자하는 이런 시간과 노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진심으로 통번역학과 재학생, 통번역 대학원생 및 통번역사 준비생, 현직에 있는 분들을 응원한다. 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