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꽝 아빠와 독서광 엄마 - 독서 꽝 아빠 이야기 #4]
첫 번째. 어떤 공간이든 ‘책’이 있으면 온통 책으로 관심이 옮겨지는 놀라운 변화
"왕돈가스 하나랑 크림 스파게티 하고 고르곤졸라 피자 하나 이렇게 주세요.”
“네~ 포크와 나이프 피클과 소스는 셀프 바를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직원분이 알려준 셀프 바로 필요한 것을 가지러 가는 길
자리에 앉을 땐 까진 보지 못 했던 식당의 숨은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복도 중간중간 북 카페처럼 여러 가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돈가스집에서 책도 진열해 두었네? 여기 사장님이 읽으신 책 들인가?’
셀프바에서 챙겨 올 것들은 뒷전이고 진열되어있는 책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보! 뭐 해요?”
이것저것 챙기러 간 내가 음식이 나왔는데도 오질 않으니 기다리던 아내가 나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제야 내 손에 포크랑 피클이 아닌 책 한 두 권이 들려져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신 참 많이 변했다~~ 지난번 미용실 갔을 때에도 예전 같으면 대기시간에 핸드폰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을 텐데 미용실 책들을 살펴보길래 '오호~ 저 사람 봐라 이젠 어딜 가도 책이 있으면 반응을 하네~ ' 좀 놀랐었는데, 지난번 우리 가족여행 때 호텔 기억나요? 로비 PC 공간에 책장 하나 가득 책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당신이 채현이랑 나 기다릴 때 꼭 그 공간에서 책을 꺼내보고 있길래 '어머 저 사람 독서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나 보다' 혼자 생각했었거든, 당신 이제는 어딜 가나 그렇게 책이 눈에 들어오고 궁금하고 그래요? 기대했던 것 이상인데 당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미용실이나 지난번 호텔 로비는 생각도 못 했던 모습이었는데 아내는 나의 변화가 꽤나 인상적이고 좋았나 보다. 연애시절 자기가 선물해 준 책을 결혼할 때까지도 아니 결혼해서도 안 읽고 모셔둔다고 원망 같은 잔소리를 듣는 게 현실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참 놀라운 변화이다.
책이 눈에 띄면 ‘저건 무슨 내용일까?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왜 궁금할까?’
예전엔 눈에 띄어도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아마 눈에 띄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내의 말처럼 어디를 가든 책이 있으면 반응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두 번째. 독서 초보인 내가 인문, 고전 독서를 더 재미있게 하고 있는 즐거운 변화
어느 주말 오후, 채현이 그림책도 반납할 겸 도서관에 갔던 날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우연히 보다 보니 만화로 이해하기 쉽게 그림과 사진이 많이 들어간 형식의 역사책들이 눈에 띄었다.
만화로 만나는 인문고전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만화로 되어 있으니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50권 시리즈 중 한국통사와 조선상고사 이렇게 두 권을 빌렸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 두 권의 책이 독서 꽝 아빠의 인문고전 독서 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확실히 만화로 진행되는 전개는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아무리 만화 형식이었더라도 지루하고 어려워 금세 중단되었을 것 같다. 초반 만화를 통해 쉽게 이해된 내용들이 기초 배경지식이 되어 다음 단계의 책 또는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한 권 한 권 도서관에서 대여해 보다 보니 나중에 채현이가 컸을 때도 읽을 겸 반납일 걱정 안 하고 편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집을 구매하기까지 했다. 살다 보니 내가 40대에 전집을 구매하고 그것도 어린이 만화 고전이라는 것이 조금 웃기긴 했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기만 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지금도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오는 채현이 친구 엄마들이 거실 책장에 인문고전 전집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언니, 이 만화 전집은 나중에 채현이 보여주려고 사둔 거예요?”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50권의 책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1번 마키아벨리 군주론. ‘좀 어렵겠지?’ 대강 어떤 내용인가 살펴만 보자는 마음에 한 장 한 장 보다 보니 회사에서 경험하는 상황과 사건들이 떠올랐다.
‘우와 이 책 뭐지? 왜 군주론을 보면서 우리 회사를 떠올리게 되는 거지? 인문고전은 고리타분한 학자들 같은 이야기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회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문고전이 이렇게 내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책이었나?
그 당시 군주론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다른 고전들은 읽어보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뒤 논어를 인문고전 만화책으로 접하게 되었을 때는 홍콩배우 주윤발 주연의 공자라는 영화를 통해 인간 공자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 뒤부터 논어의 다양한 해설서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논어에 대한 영상 강의를 보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변화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어린이 만화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논어라는 책이 더 궁금해져서 관련 영화와 강의 영상까지 찾아보며 점점 더 몰입해 가는 단계가 되었다.
사람들이 인문고전 독서가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시작하지 않는 이유, 시작했더라도 중단되는 이유가
어렵고, 재미없고,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처음 자기 계발서를 통해 책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에도 왠지 인문고전은 지루하고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독서 초보인 내가 인문고전 독서를 즐겁게 탐구하듯 하고 있는 이 즐거운 변화의 핵심은 바로 ‘시작 단계의 쉽게 이해되는 경험’과 인문고전의 메시지들이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인생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중요한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세 번째. 독서를 통해 남이 아닌 나를 먼저 바라보게 되는 고마운 변화
회사에서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일정 기간 동승 근무를 하며 업무를 알려주는 교육을 진행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분명히 잘 알려준 것 같은데 동승 근무가 종료된 뒤 실수를 하거나 업무처리를 잘 해내지 못하는 신입직원의 역량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읽고 있는 책 내용 중 회사나 어느 조직에서든 신입사원 때 기초를 가르쳐 주는 선배 직원을 잘 만나야 한다는 글이 있었다. 회사와 조직도 중요하지만 처음 일을 배우게 되는 직속 선배나 상사가 누구냐에 따라 직장생활 적응이나 향상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상 신입직원의 성향이나 역량 문제로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처음 중요한 기본을 바르게 제시하고 옳은 본보기가 되는 선배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보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신입직원 입장에서의 나의 직무교육 방법이나 교육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그 문제나 어려움의 발단, 힘들게 하는 사람의 문제점으로 치부해버리면서 항상 남 탓을 먼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독서를 하다 보면 나의 상황과 태도를 반성하게 되거나 혹시 내가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를 살피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40대 후반 이제야 조금씩 인생의 철이 드는 것 같은 이 고마운 변화의 핵심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관점의 변화’ 덕분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다르게 보는 힘!
독서를 통해 관점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진다.
관점이
인식이 되고
가치가 되고
실재가 되고
미래가 된다.
-공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