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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Apr 27. 2024

못 들어갈 물가는 안 가요

프리다이빙 부작용...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감선생님은 구경만 하는 스포츠가 싫다고 하셨다. 직접 야구를 하는 게 좋지 응원만 하는 건 재미없다며, 직접 축구를 하는 게 재미있지 축구를 보기만 하는 건  별로라고 하셨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내게 바다나 계곡은 들어갈 수 있을 때만 좋은 곳이다. 제일 이해 못 할 일이 바닷가에 바람을 쐬러 가는 것. 수영장이든 강이든 못 들어가는데 구경만 하러 가는 것은 내 입장에서 참 무쓸모한 일이다. 이런 취향은 프리다이빙이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더욱 명확해져 버렸다.


프리다이빙은 못해도 수심 5m 이상의 풀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집 근처에서 흔히 즐기기 어려운 취미이다 보니 수심 깊은 수영장이나 바닷가 사는 사람들이 가끔 부럽기도 하다. 진주에서 가깝게는 고성풀장이 있고 조금 더 품을 들이면 창원이나 부산 풀장이 있다. 다이빙은 감기 기운이 있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수심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체력 안배가 중요한 스포츠이다. 그래서 멀리는 용인 딥스테이션 같은 좋은 곳이 있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부담스러운 곳이다.


처음 프리다이빙을 배운 곳은 고성풀장이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들어가 처음 11m 바닥을 찍고 올라왔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용인 딥스테이션에 가서 수심 20m 다이빙에 성공했을 때 또 다른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숨을 참는 스테틱 기록을 재면서 4분이나 참아내던 날 늦은 나이에 발견한 재능에 기뻐하기도 했다.


프리다이빙은 이렇게 기록을 경신해 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프리다이빙을 사랑하는 이유는 물속에서 느껴지는 무중력상태의 자유. 수심이 깊을수록 2,3 기압의 수심이 폐를 짜부라트리지만 내 숨이 남아있는 한도 내에서 나는 앞뒤좌우 없이 오롯이 심해의 적막함에 둘러싸이는 순간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주 속에 숨겨진 심연의 내 속으로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물속에 머무는 시간이래 봐야 고작 1,2분 정도지만 그 시간이 선물하는 감정은 1분짜리가 아니다.


특히 바다 다이빙은 환상적이다. 국내산 바다 중에는 단연 울릉도 앞바다를 제일로 치고 싶다. 옥색 물빛이 매력적이고 수심이 깊으면서도 잔잔한 파도 덕분에 아름다운 바닷속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반겨주는 이름 모를 물고기와 산호초들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푼타카나도, 세부도 울릉도만 못했던 것 같다. 바다 다이빙은 바람과 파도, 해류 등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수영장 보다 조금 더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더 넓고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머리를 무게 추 삼아 바닥을 향해 고꾸라 트리고 기다란 핀을 차며 쭉쭉 깊은 물속을 가르고 들어가는 동안 나는 물방울같이 작고 작은 존재가 된다. 잘디 잘게 쪼개어져 물과 함께 녹아 사라졌다가 물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다른 모든 것들이 사소해진다. 다 별거 아닌 듯 만만해진다. 마음도 가벼워진다. 마음을 짓누르는 수많은 말들. 어깨에 얹혀있는 무게들. 나를 쫗아 다니는 불안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훌훌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풀장이나 바다로 먼 거리를 찾아가는 수고로움도, 꽉 끼는 슈트를 끼워 입는 수고로움도 다 값어치 있는 일이다. 다만  그 앞에서 감상만 하는 바다는 이제 내게 무의미한 바다가 되어 버렸다.  내 인생에서 바다는 다이빙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못 들어갈 물가는 이제 가고 싶지 않다.


함께 다이빙을 즐기는 모임의 단톡방에 다음 달 프리다이빙 출격일이 올라왔다. 혹시 이번에는 따라갈 수 있으려나 싶어 달력을 이리저리 꼼꼼히 따져본다. 아이코... 다음 달에도 이미 많은 일정들이 얼룩덜룩 가부좌를 틀고 선점해있다. 아무래도 6월을 기약해야겠다. 이렇게까지 그리워할 일인가 싶지만 아무래도 다이빙을 너무 오래 쉰 때문인가 보다. 어서 다이빙의 계절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도미니카 공화국 푼타카나 사오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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