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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y 20. 2024

지갑에 구멍이 났어도 취미생활이 필요한 이유

풀장에 입장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오랜만에 다이빙 일정이 잡혔다. 얼마나 오랜만인지 롱핀 가방을 들고 좁은 샤워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프린이 시절에 하던 헛걸음질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근무지 옮기고 적응하느라, 아르헨티나 다녀오느라 지갑도 찟어졌고, 책 출간 하느라, 가족이 아파서...등 그간 다이빙을 못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결국 취미라는 것은 아무리  좋아도 생업과 가족이라는 절대우위의 경쟁상대를 물리칠 수 없기에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릴 수밖에 없는것 같다. 그러나 또 취미라는 것은 우선순위로 가득한 일상이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이 지루할 때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묘약 같은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피곤해도, 지갑에 구멍이 났어도 다이빙은 놓을 수 없는 것.


함께 다이빙하는  무가당프리다이빙 강사님과 팀원들이 고성 해양레포츠 아카데미에 있는 11미터 풀장에 모였다. 간 밤에 수면도 부족했고, 스트레스 때문이지 두통으로 몇일째 머리도 무거웠다. 너무 오랜만이라 다이빙이 혹시 잘 안될까 봐 염려스러웠다. 버디를 정하고 5미터부터 천천히 수심을 찍어 보았다. 염려가 무색할 정도로 몸은 물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사님이 오늘은 노 핀 다이빙을 해 보자고 제안하셨다. 프리다이빙은 거대한 롱핀을 신고 물을 차면 그 힘으로 수월하게 물속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스포츠다. 그러니 핀을 벗고 들어가면 슈트의 부력을 상쇠 하는 힘을 오로지 내 몸으로 만들어 내야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힘들고 재미도 없을것 같았지만 난 순종적인 수강생이므로 선생님이 시키면 그냥 한다.


첫 노 핀 다이빙 시도는 실패. 몸이 아예 물속에 들어가질 않았다. 가라앉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니! 그러고 보면 물속에 빠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다. 노련한 강사님은 물속으로 쏘옥 가라앉는 시범을 보여준다. 목에 거는 넥 웨이트를 추가하고 부력조절을 위해 공기를 뱉어내며 다시 입수했다. 두 손으로 물을 위로 밀어 올리며 몸을 가라앉혔다. 겨우 5미터 바닥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거의 바닥나 버렸다. 문제는 핀이 없기 때문에 상승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올라오기 위한 발차기와 물 끌어당기기에 더 많은 숨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어쩌겠는가. 머금은 공기가 없다고 물속에서 안 나올 수는 없는 노릇. 겨우겨우 물 밖으로 나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에게 넥 웨이트를 빌려줘버린 강사님은 웨이트가 없어도 시범이 가능한 능력자. 거듭 유심히 관찰한 결과 관건은 입수할 때 뱉어내는 숨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며 몸으로 물길을 잘 타는 것. 가능한 적은 움직임과 에너지로 부력을 거슬러 입수하고, 웨이트의 무게를 거슬러 상승하기. 노 핀 다이빙에 있어서 내게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새벽수영. 매일 새벽 자유수영을 다닌 덕에 오리발 없이 물 차기와 물 잡기 연습이 되어 있었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몸속의 공기와 동작에 집중했다. 유산소운동에 최적화된 수영과 달리 프리다이빙은 나를 다스리고 물을 관찰하는 정적인 운동이다. 같은 듯 다른 두 운동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몇 번 반복해서 연습하니 머리를 먼저 물속에 집어넣어 입수하는 '덕다이빙' 자세로 노 핀 다이빙이 가능해졌다. 오랜만에 와서 이퀄도 안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찌하면 물 속으로 잘 들어갈수 있을까하는 한가지 고민에 몰두했다. 프리다이빙은 숨을 뱃속에 넣었다 뱉었다 숨고르기를 하다가 준비가 된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스치는 순간을 잡아채서 입수를 한다. 입수하는 순간 느낌이 온다. 아, 이번에는 금방 돌아 나가야 겠구나. 아, 이번에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겠구나. 뭐 이런 느낌.


어쩌면 11미터 바닥도 찍고 오겠다는 자신감이 살살 따라붙었다. 자세는 모르겠고 그냥 덕다이빙으로 11미터 웅덩이 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라. 11미터 바닥으로 몸이 쭉쭉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가슴에 남은 숨을 가늠해 볼때 상승시에 사용할 공기를 빼고도 여유가 느껴졌다. 그럴땐 조금 더 도전해야 한다. 나는 11미터 풀장의 바닥에 누워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만 올라갈까? 좀 더 있을 수 있겠어? 그만 올라가자. 아니 조금 더 버텨봐. 조금만 더 머물면 1분은 충분히 머물겠는걸. 음... 그만. 지금이야. 몸을 일으켜 세우고 힘껏 바닥을 찼다. 천천히 상승하는 몸을 느끼며 수면을 주시했다. 수면으로 나와 가쁜숨을 내쉬면서 다이빙용컴퓨터시계의 기록을 확인한다. 1분17초. 나쁘지 않다. 이거 재미있는데! 한번 더? 한번 더? 한번만 더? 포즈는 엉성했지만 반복할수록 노핀다이빙이 쉬워졌다.



2시간 동안 몇번이나 물 속을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프리다이빙은 정적인 운동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특히 힘을 보태주는 핀이 없을때는 곱절의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을 몰랐다. 다이빙을 끝내고 로비 소파에 누은듯 앉은 내 몸에는 아직 물속에서 건져오지 못한 영혼이 빠져있었다. 그러니 안전한 귀가를 위해 뜨끈한 국물섭취는 다이빙 후 국룰이다. 다행히 고성 해양레포츠 아카데미 가까이에 '새로운 통일냉면'이라는 맛집이 있다. 특히 갈비탕이 끝내주게 맛있다. 갈비탕과 냉면을 폭풍흡입 하는 중에 칭찬봇 강사님의 찬사가 이어졌다. 첫 노핀인데 이렇게 잘 하면 어쩌냐~ 프로체력아니냐~ 자격증 레벨업 하셔라~ 갈비탕 뚝배기가 비어갈수록 어깨뽕이 슬금슬금 솟아오른다. '새로운 통일냉면'집은 갈비탕도 맛있고, 칭찬도 맛있는 맛집이 확실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잔잔한 노을과 함께 흐르는 팝송이 즐거운 취미생활에서 얻은 긍정에너지를 차곡차곡 가슴에 담아주었다. 두통이 사라진 머리속에서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한번 더?


#프리다이브무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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