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닷 May 26. 2024

기록의 힘

조선시대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영조와 대립관계에 있는 소론과 연대하는 것은 물론 학문을 멀리하고 무예수련을 더 중요시했다. 영조의 눈 밖에 난 사도세자는 1762년 5월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임오화변을 겪었다. 당시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아들 정조와 집안을 지키기 위해 갖은 수모를 참아가며 애를 썼다. 다행히 정조는 영조가 서거한 뒤 왕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친정인 홍씨 가문은 임오화변의 주범으로 몰려 관직을 빼앗기고, 고향으로 낙향하는 등 명예가 실추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정조 암살 역모사건의 주범으로 삼촌 홍낙임이 정쟁에 휩쓸려 유배를 가게 된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정계의 암투로 바닥에 떨어진 친정 집안의 명예를 되찾고 싶어 했다. 효자였던 정조는 자신의 아들이 15세가 되면 어머니 집안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47세의 이른 나이에 어머니보다 일찍 죽고 말았다. 정조의 뒤를 이은 왕은 순조. 정치적 이유에서 진실과 증거들은 대부분 사라졌기에 순조는 진실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원통한 마음을 감출길 없었던 혜경궁 홍씨는 손자 순조가 정조의 약속을 지켜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때 혜경궁 홍씨가 생각해 낸  비책은 바로 기록이다. 


그녀는 환갑인 1795년부터 10년 동안 자신의 일생을 열심히 기록한다. 이 기록이 바로 한중록. 이렇게 깨알 재미가 넘치는 이야기를 우리가 상세히 알 수있는것은 한중록 덕분이다. 할머니가 노년을 바쳐서 기록한 60년 궁중생활 회고록을 통해 순조는 임오화변의 전말을 알게 된다. 아버지 정조가 숨기고자 했던 사도세자의 오점들까지 낮낮이 써 내려간 글 덕분에 순조는 음모와 모략으로 덮일 뻔했던 역사의 한 줄기를 알게 된다. 순조는 할머니 혜경궁 홍씨의 친정에 닥친 여러 억울한 혐의들을 풀어주었고 혜경궁 홍씨는 그렇게 한을 풀고 죽을 수 있었다. 


물론 전지적 홍씨 시점으로 쓰인 글이므로 모두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정조가 감추려 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광기, 조정대신들이 흔적을 없애고 싶어 했던 노론과 소론의 갈등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순조가 알 수 있었던 것은 혜경궁 홍씨의 기록 덕분이었다. 200년도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궁중의 음모와 갈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 덕분에 후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값진 자료로 그 가치가 빛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 '사도',                           sbs드라마 '비밀의문',                                  mbc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기록은 세월이 갈수록 힘이 세진다. 기록을 하는 순간에는 기록의 힘이 보잘것 없을 수 있다. 너도 봤고, 나도 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세 진다. 너희는 잊었지만 나는 기억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알던 이는 모두 죽고 없어진 지 오래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또, 기록은 누적될수록 힘이 세진다. 내가 알아낸 것, 나만 아는 것은 종이 한 장의 기록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을 하나 보태어 기록하면 또 한 장만큼 힘이 세어진다. 기록은 그렇게 누적될수록 정확하고, 강해진다. 


인류의 지성은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록의 여정 속에서 선별되고 엄선된 것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오늘 인류의 지성에 한 장의 힘을 보탤 기록을 남겨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하버드대학교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바로 이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